한국 경제의 위기 징후가 지표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3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2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소비자·생산자·수출입물가를 모두 포괄해 국민경제 전체의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2분기 연속 상승률이 0%에 그쳤다. 이에 따라 ‘저물가-저성장’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3분기 국민소득(잠정)’ 자료를 보면, 실질 국민총소득은 2분기에 견줘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2012년 1분기(0.3% 증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질 국민총소득은 우리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분기 대비 0.9% 성장했는데,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0.3%)이 이를 크게 밑돈 것은 생산 증가만큼 구매력 증가가 따라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수출 가격보다 수입 가격이 더 올라 무역 손실이 전분기보다 확대된데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번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을 뺀 국외순수취요소소득도 줄어드는 바람에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물가에 대한 경고음도 한층 커졌다. 지디피 디플레이터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0%에 머물렀다. 1년 전에 견줘 국민경제 전체의 물가수준이 전혀 오르지 않는 상태가 2분기째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1% 오르는 데 그쳐 9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며 0%대의 지디피 디플레이터 상승률을 이런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이근태 엘지(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국내 수요 위축, 경기 부진이 맞물리면서 전반적으로 가격 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다”며 “저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떨어지고 결국 디플레이션으로 갈 수 있는 만큼 통화정책 등을 통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월간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점차 느려지고 있으며 내수 부진에 이어 수출이 감소세로 전환되는 등 총수요 증가세도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자물가도 내수 부진,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앞으로도 낮은 상승률을 지속할 것이라고 연구원은 전망했다.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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