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과 소니’ 쓴 삼성 전문가, 장세진 카이스트 교수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새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31일 <한겨레>와 만나 삼성이 1인 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피드 경영’에는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가 이제는 삼성에 장애요소가 된다”며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반도체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오히려 극복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옛 비서실로 통하는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와 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에 치중하고 있다”며 “신수종 사업이 안되고, 소프트웨어 육성이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학 교수로도 일하는 그는 2007년 교육부가 선정한 ‘국가 석학 15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국제 경영 전략’ 분야에서 이름난 전문가다. <삼성과 소니>란 책을 쓴 ‘삼성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에는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에 참석해 ‘다시 전략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도 했다.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 치중…
신수종 사업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 장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지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없다”고 말했다. 연말 휴대전화 실적 부진으로 교체설이 나돌던 신종균 사장의 유임 역시 ‘대안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장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강점인 원가절감과 강한 유통채널 등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다.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까지 여파가 미쳐,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점유율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삼성전자의 한 분기당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 10조1635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4년 3분기에는 4조600억원으로 급감했다. 장 교수는 이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본다. 스마트폰 시장 초창기에는 애플의 혁신 제품을 삼성이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빨리 따라갈 수 있어 높은 영업이익이 보장됐지만, 이젠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추격해 많은 경쟁자가 생겨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비전 제시하는
실질적 최고경영자 없어
현재 CEO 3명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져” 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한 투자를 강조했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안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꼽았다. 장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프트웨어와 글로벌경영 역량을 키우는 데 아버지 시절보다 더 긍정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에서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을 감시하고 큰 방향만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계열 회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슈나이더의 사례를 들었다. 170여년을 이어온 슈나이더는 철강업→전기업→에너지관리 등으로 주사업을 탈바꿈하면서 1980년대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 역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같은 흐름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고집한 ‘무노조 경영’ 역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오너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 가장 큰 리스크…
진로 부도·금호 수조원 손실
총수 판단 잘못이 문제였다” 장 교수는 삼성에스디에스(SDS)와 제일모직 상장에 대해선 경영이 투명해지고 내부거래 위험이 줄어들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막대한 상장차익 등 무리수는 향후 출범할 이재용 체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상장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한국 재벌과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오너 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그는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시장점유율 50%에 달하던 진로가 부도나고, 몇해 전 금호그룹이 대한통운,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가 수조원 손실을 보는 것도 총수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한전 터를 사는 데 무려 10조원을 써 내고 전문경영인들이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례 등 많은 기업에서 그런 문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총수 일가라고 30대 초반의 임원이 탄생하는 기업은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기피하고 결국 인재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후진적인 기업 문화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하면 투자한다는
정부 주장 현실성 없어…
부품쪽 전문기업 생기고
새 서비스 제공 업체 많이 생겨야” 그는 정부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100%에서 50%로 완화하기로 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단점을 막으려는 지주회사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완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는 정부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이상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며 “규제 완화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고, 설령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온다고 해도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부품 쪽 전문 기업이 생기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인사·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 치중…
신수종 사업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 장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지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없다”고 말했다. 연말 휴대전화 실적 부진으로 교체설이 나돌던 신종균 사장의 유임 역시 ‘대안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장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강점인 원가절감과 강한 유통채널 등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다.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까지 여파가 미쳐,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점유율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삼성전자의 한 분기당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 10조1635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4년 3분기에는 4조600억원으로 급감했다. 장 교수는 이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본다. 스마트폰 시장 초창기에는 애플의 혁신 제품을 삼성이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빨리 따라갈 수 있어 높은 영업이익이 보장됐지만, 이젠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추격해 많은 경쟁자가 생겨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비전 제시하는
실질적 최고경영자 없어
현재 CEO 3명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져” 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한 투자를 강조했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안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꼽았다. 장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프트웨어와 글로벌경영 역량을 키우는 데 아버지 시절보다 더 긍정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에서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을 감시하고 큰 방향만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계열 회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슈나이더의 사례를 들었다. 170여년을 이어온 슈나이더는 철강업→전기업→에너지관리 등으로 주사업을 탈바꿈하면서 1980년대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 역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같은 흐름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고집한 ‘무노조 경영’ 역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오너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 가장 큰 리스크…
진로 부도·금호 수조원 손실
총수 판단 잘못이 문제였다” 장 교수는 삼성에스디에스(SDS)와 제일모직 상장에 대해선 경영이 투명해지고 내부거래 위험이 줄어들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막대한 상장차익 등 무리수는 향후 출범할 이재용 체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상장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한국 재벌과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오너 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그는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시장점유율 50%에 달하던 진로가 부도나고, 몇해 전 금호그룹이 대한통운,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가 수조원 손실을 보는 것도 총수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한전 터를 사는 데 무려 10조원을 써 내고 전문경영인들이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례 등 많은 기업에서 그런 문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총수 일가라고 30대 초반의 임원이 탄생하는 기업은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기피하고 결국 인재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후진적인 기업 문화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하면 투자한다는
정부 주장 현실성 없어…
부품쪽 전문기업 생기고
새 서비스 제공 업체 많이 생겨야” 그는 정부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100%에서 50%로 완화하기로 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단점을 막으려는 지주회사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완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는 정부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이상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며 “규제 완화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고, 설령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온다고 해도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부품 쪽 전문 기업이 생기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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