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현장에서
재벌 총수의 가석방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연초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사실상 대통령에게 이를 공식 요청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법치주의 훼손과 재벌특혜라며 반대를 굽히지 않는다. 가뜩이나 전망이 어두운 2015년의 첫출발부터 사회적 갈등의 이슈가 또 하나 더해진 모습이다.
때맞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논의의 핵심인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에 대한 선처 의견을 내놨다. 그는 그동안 다른 경제단체가 관행적으로 재벌 총수 선처론을 펼 때에도 침묵을 지켜왔다. 또 여권의 가석방 주장 논거인 ‘경제 살리기’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대신 최 회장이 이미 4년의 형기 중 절반을 보낸 만큼, 계속 감옥에 있기보다 나와서 진정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시민단체들도 그의 발언에 주목한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박 회장의 그동안 모습을 볼 때 발언의 진정성을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최 회장이 먼저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야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에스케이도 여러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다만 시기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한 고위임원은 “최 회장이 (감옥) 안에 있을 때 발표하면 자칫 ‘가석방용’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만약 에스케이가 진정성이 있다면, 외부 시선을 크게 의식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변화와 혁신을 가석방 이후로 미룰 게 아니라, 감옥 안에서부터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미 한차례 형사 처벌과 사면의 전력이 있는 최 회장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 회장은 옥중에서 ‘사회적 기업’ 관련 책을 펴내며 사회공헌을 다짐했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1조원에 가까운 사재 출연을 한 적이 있다. 모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불법비리의 재발을 막는 근본 대책은 아니다.
최 회장은 수백억원의 계열사 돈을 빼돌려 펀드에 투자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총수의 준법경영 준수 의지가 선결과제다. 다음으로는 설령 총수가 불법행위를 하려 해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내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시스템의 구축이다. 박 회장도 “에스케이가 먼저 혁신을 하면 국민들에게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며 동의한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위해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 강화와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강조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사외이사 선임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총수나 회사와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이사회 안건의 원안 가결률이 99.7%(작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 에스케이는 2003년 글로벌 회계부정 및 소버린 사태 이후 지배구조 개혁을 약속하며 시민단체와 소버린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받아들여 호평을 받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2010년 초 독립적 사외이사들이 모두 물러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는 이를 제도화·항구화하는 게 과제다. 신뢰할 만한 시민단체로부터 추천받는 것도 방법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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