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회의 경제산책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마지막날에 내 종기를 기억하기를!” 필생의 역작 <자본론> 제1권의 출간을 앞두고 그 저자가 한 절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쓴 말이다.
종기? 자본주의에 대해 인류가 생산한 가장 탁월한 저작 중 하나의 출간을 앞두고 벅차올랐을 가슴을 담아내기엔 너무도 생뚱맞은 단어 아닌가. “이 책은 종기와 매일같이 방문하는 채권자에게 시달리면서 쓰였다네!” 실제로 <자본론> 집필에 한창이던 1860년대 중반 마르크스가 가까운 지인에게 쓴 편지들은 그야말로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처절한 ‘투병기’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질환을 “프롤레타리아의 질병”이라고 부르면서, 세계 자본주의를 호령하던 당시 런던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자신에게 내린 천형이라고 저주했다. 그러나 몇년 전 독일의 한 연구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의 피부병은 다름 아닌 담배 때문이었다.
그는 엄청난 담배 애호가였다. “<자본론>으로는 이걸 쓰느라 피워댄 시가 값도 안 나올 걸세.” 과연 담배가 아니었다면 마르크스는 망명지에서 외롭고 힘겨운 창작의 밤들을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담배가 한 원인이 되어 집필이 늦어지고, 급기야 네권으로 기획된 저작 중 오직 첫번째 것만 ‘완성’한 채 그 저자가 다소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 그가 하려고 했으나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이 무엇이었냐를 두고 우리는 지난 세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열을 허비했는가? 담배의 ‘효험’보다는 ‘해악’이 더 크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담뱃값 인상은 환영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이번 조처를 단행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세수효과’ 먼저 따지는 태도부터가 틀려먹었지만, 정부 뜻대로 되어도 문제다. 무엇을 위한 세수 확보인가? 이것은 결코 정부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계층에서 더 ‘기여’할 수 있는 품목에 세금을 매기는 게 복지를 위해서나 경기회복을 위해서나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디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하락) 퇴치를 위한 ‘전가의 보도’쯤으로 보는 것 같다는 점. 작년 말 발표된 경제전망에서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2.0% 중 0.6%포인트, 즉 무려 30%를 담뱃값 인상의 효과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위적인 가격 인상으로 디플레를 극복했단 얘긴 들어본 바 없다. 만약 우리 경제가 디플레 위험에 처했다면, 실질소득을 높여 민간수요 증대가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게 만드는 게 정석이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특정 품목 가격만 오른다면, 소비자는 다른 품목 소비를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소비가 줄어든 품목의 가격이 하락해 결과적으로 전체 물가 수준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증대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저녁이 있는 삶’을 대중에게 보장하는 것은 흡연율 감소와 국민건강 증진에도 기여하는 ‘만병통치약’이다. 이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고 건전한 취미활동에 몰두하거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면, 소기의 목적은 자연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건강과 국민경제를 걱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가?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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