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부산시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안 한국거래소에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치는 온실가스(탄소)의 배출권이 주식처럼 거래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 개장식이 열렸다. 부산/연합뉴스
첫날 t당 8640원에 1190 거래
유럽시장과 비슷한 수준에 형성
정부, t당 1만원 못넘게 묶어둬
공정한 시장가격 정착에 걸림돌
효과 보려면 자율적 거래 보장을
유럽시장과 비슷한 수준에 형성
정부, t당 1만원 못넘게 묶어둬
공정한 시장가격 정착에 걸림돌
효과 보려면 자율적 거래 보장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온실가스 규제를 맡기는 배출권 거래 시장(배출권 시장)이 국내에서 처음 열렸다. 배출권 거래는 가장 효과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졌지만, 산업계 요구에 맞춰 거래가격에 제한이 가해져 배출권 시장이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한국거래소는 배출권 거래 시장을 열고 오전 10시부터 두시간 동안 배출권 거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첫날 배출권 종가는 톤당 8640원으로, 유럽 배출권 시장 가격 6.7유로(8625원)에 비춰볼 때 약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거래량은 1190톤이었다. 이번에 시작된 1기 배출권 시장은 2017년까지 이어지고, 이후 2020년까지 2기 배출권 시장이 운영된다.
배출권 시장의 원리는 배출권이 돈 역할을 한다는 것만 빼면 일반 시장과 같다. 한 사회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정해 배출권에 돈과 같은 희소성을 부여한 뒤, 배출 부담을 누가 얼마큼 질지는 시장 거래에 맡긴다. 감축이 쉬운 기업은 감축을 통해 남은 배출권을 시장에 팔아 이득을 챙기고, 감축이 어려운 기업은 과징금을 무는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오면 된다. 온실가스 저감 능력과 생산성에 끼치는 영향이 기업별로 달라 정부조차 목표치와 감축분을 효과적으로 나눠줄 수 없는 상황에서, 각 기업이 시장가격과 저감비용을 비교해보고 배출권을 살지, 온실가스를 줄일지 판단하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목표치(2020년 배출 예상치의 70%)까지 온실가스를 줄여가는 식이다.
배출권 시장의 관건은 거래를 통한 자율적인 가격형성이다. 이수재 한국거래소 탄소시장준비팀장은 “시장 거래를 통해 공정한 가격이 만들어져야 온실가스 저감 유인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를 통해 배출권 희소성에 맞는 가격이 자율적으로 형성돼야 목표에 맞는 온실가스 저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배출권 시장은 사실상 자율적으로 가격을 형성하기 어려운 형태로 시작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배출권 기준가격을 1만원으로 설정해두고, 3개월 평균 시장가격이 1만원을 넘길 경우 예비물량을 풀어 시장안정화 조처에 나설 뜻을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업계에서 배출권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과징금 폭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국외 사례 등을 참고해 기준가격을 설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정부가 배출권 평균가격 상한을 사실상 1만원으로 묶어두는 조처를 취한 셈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된 배출권 실제 가치가 1만원을 넘길 때다. 정부가 통제한 실제 가격이 시장가치에 못 미치면, 온실가스 저감 능력이 충분한 기업들도 온실가스를 줄인 뒤 남는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기보다 추가적인 감축을 포기하고 남는 배출권만 보유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감축이 어려운 기업들만 배출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1기 시장이 끝날 때까지 배출권을 구하지 못한 기업은 배출권 가격의 3배에 이르는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유종민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각 사회의 배출권 가격은 저감 능력, 배출권 총량에 따라 다른 만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정부는 가격 통제와 시장거래를 통한 온실가스 저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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