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전자상가 내 휴대전화 판매점.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케이티(KT) 이동통신 가입자 박아무개씨는 대리점을 방문해 재약정을 맺으며 “쓰던 스마트폰(아이폰5)을 계속 사용할테니 분리요금제 가입 신청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리점 직원은 “단말기 지원금(보조금)을 받은 이력이 있는 단말기라서 분리요금제 선택이 어렵다”고 했다. 박씨가 “2년 약정기간이 지났고, 할부금도 다 치른 상태라 된다고 하더라”라고 얘기해도 대리점 직원은 막무가냈다.
그럼 회사 쪽에 물어보자며 케이티 고객센터(114)로 전화를 걸었는데, 고객센터 상담원의 설명도 대리점 직원과 같았다. 박씨의 요청으로 전화를 넘겨받은 고객센터 팀장도 같은 이유로 분리요금제 가입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여러 차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다시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지만, 박씨는 21일까지도 분리요금제 가입을 못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 이동통신 가입자 배아무개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리점을 방문해 재약정을 맺으며 분리요금제 가입을 신청하자, 단말기 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어 안된다고 했다. 배씨는 “대리점 직원이 분리요금제 가입이 안돼 요금 감면을 받을 수 없으니 새 단말기로 바꾸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배씨도 여전히 분리요금제 가입을 못한 상태다.
21일 미래창조과학부 류제명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박씨와 배씨의 제보 내용을 검증해달라는 <한겨레> 요청에 “약정기간이 지났고 할부금도 다 치렀다면, 당연히 분리요금제 가입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대리점 직원과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분리요금제 가입 기준을 엉뚱하게 안내하고 있는 것 같다. 단통법상 고객차별 행위에 해당돼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통사들이 분리요금제 적용 기준을 멋대로 운용해, 소비자들이 통신요금을 더 무는 피해를 당하고 있다. 분리요금제란 단말기 지원금 대신 통신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동통신에 새로 가입하면서 중고 단말기 등을 가져가거나, 재약정을 맺으며 쓰던 단말기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하면 약정기간 동안 다달이 요금의 12%를 깎아준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때 도입돼, 알뜰 소비자들한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 회사들이 분리요금제 가입 자격을 멋대로 좁혀, 박씨와 배씨처럼 단말기 지원금도 못받고 요금 감면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요금제나 단말기를 고를 때 고객센터 상담원이나 대리점 직원의 설명과 권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분리요금제 가입 대상인데, 대리점 직원의 잘못된 설명으로 분리요금제에 가입하지 못해 요금 감면을 받지 못하고 있는 소비자가 더 있을 수 있다. 류제명 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을 파악해 조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박씨와 배씨의 제보 내용에 대한 확인 취재를 시작하자, 이동통신사들은 “착오로 잘못 안내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케이티 관계자는 “해당 부서에 확인해보니, 분리요금제 가입 대상이 맞다고 한다. 해당 고객한테 사과하고, 바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고객센터 상담원들과 대리점 직원들이 동시에 잘못된 안내를 할 수 있었는지’, ‘혹시 있을 수 있는 다른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은 어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박씨는 “나는 ‘나 통신기자 맞아?’란 한겨레 기사를 보고 분리요금제 가입 기준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끝까지 요구할 수 있었다. 대다수는 대리점 직원의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요금의 12%를 감면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셈이다.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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