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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코스닥 광풍 15년…상처는 아물었을까?

등록 2015-01-25 20:08수정 2015-01-26 09:22

2000년 IT거품 때 최고 지수 2834
4분의1 토막나 투자자 깊은 상처
테마 바람에 주가 폭등락 거듭
벤처기업 창업, 육성 구실 미흡
출발 때 지수 1000 회복 아직 먼길
상장사 늘었지만 시가총액도 미미
올해 훈풍, ‘질적인 성장’ 의견도
“막연한 기대 말고 기업가치 봐야”
2000년은 코스닥 시장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2000년 3월10일 코스닥 지수는 2834.4(현재 지수 환산)까지 치솟았다. 당시 시장의 34.3%를 차지했던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거품이 만들어 낸 코스닥 사상 최고점이었다. 거품은 급하게 사그라들었다. 그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26일 지수는 525.8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4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2000년 코스닥은 하락률(79.47%)과 변동성(3.95) 면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떠안으며 한 해를 마쳤다.

격한 부침을 겪으며 개미 투자자들은 웃고 울었다. 직장인 김아무개(42)씨는 당시 가장 뜨거운 종목 가운데 하나였던 새롬기술에 투자했다가 반년 만에 3000만원을 잃은 경험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김씨는 “정부가 ‘아이티’ 벤처 기업은 무조건 밀어준다는 확신이 있었고 언론에서도 매일 그 얘기를 하니 투자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1999년 8월 2880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새롬기술은 이듬해 2월 불과 6개월 만에 28만2000원까지 100배 가까이 올랐다. 언론은 ‘새롬기술에 투자했다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 평범한 직장인 이야기’ 등을 전하며 기대에 불을 붙였다. 순이익 4억원 정도인 이 인터넷 전화 회사의 시가총액은 2조4000억원을 넘겼다. 무섭게 오르던 새롬기술 주가는 그만큼 가파르게 떨어져 2000년 말 5500원대로 주저앉았다.

김씨는 당시 심경을 묻는 질문에 “그저 죽고 싶었다. 본전 생각과 ‘그래도 정부가 살려주겠지’라는 기대 때문에 손절매(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손실을 입고 주식을 파는 것)도 못하고 투자금을 날렸다. 이후로 코스닥 근처는 얼씬도 안 한다. 정부도 시장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언론과 정부가 지핀 아이티 열풍의 거품이 사라지며 정책 기대감이 만든 장세에 대한 김씨의 신뢰도 무너졌다.

2000년과 같은 광풍은 코스닥 시장에 다시 불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코스닥 지수 최고치는 2002년 3월 943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8년 10월 지수는 261.19까지 떨어졌다. 2008년 10월 이후 지수는 단 한차례도 600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 코스피(유가증권시장)는 2000년 지수 890대였던 데 비하면 두 배 정도 큰 시장이 됐다.

지수의 방향이 엇갈리며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장 규모 차이도 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999년 725개 코스피 기업의 시가총액은 349조5000억원 정도로, 기업 수 453개의 코스닥 시가총액(98조7000억원)의 3.5배 정도였다. 2014년 코스닥 기업 수는 1061개로 늘었지만 격차는 더 벌어졌다. 코스피 시장은 현재 코스닥 쪽의 8.3배에 이른다. 허영구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장은 “한때 코스닥이 2800을 넘던 시장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상 벤처기업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코스닥 상장뿐인 우리나라 사정에서 지지부진한 코스닥은 벤처기업 창업 유인을 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코스닥에 속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실적도 빈약해졌다. 2000년 나란히 적자를 기록했던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기업의 순이익 추이는 2000년 이후 방향이 갈렸다. 코스피는 2000년 이후 단 한 차례 적자 없이 순이익 흑자세를 이어간 반면 코스닥 기업들의 순이익 합계는 2003년, 2007년, 2008년 적자를 기록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와 코스닥의 격차 확대에 대해 “2000년 이후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 진행되며 경제정책에서도, 시장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 벤처 중소기업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간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가 키운 아이티 거품 이래, 코스닥의 역사는 ‘테마’의 역사이기도 했다. 실적이나 확실한 성장성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가는 사건이나 특정한 주제에 따라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종우 센터장은 “개인 위주의 시장인데다, 정보가 많지 않다는 점, 코스닥의 큰 부분을 이루는 벤처의 특성이 현재가치보다 미래의 가치를 끌어온다는 점들이 어우러져 테마가 시장을 이끌어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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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관련주처럼 뜬금없는 테마도 있었지만 각 정부의 정책에 맞춘 정책테마주들도 해마다 등장했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 ‘국가 미래 비전’ 등을 외치며 육성할 산업분야를 발표하면 시장에서 산업과 관련된 ‘테마’가 만들어지고 여기 속한 주식이 코스닥 시장에서 급등세를 보이는 식이다. 기대감에 주가는 올랐지만 막상 실제로 산업이 성장하지 못해 실적 하락과 주가 하락을 동시에 경험하는 코스닥 종목들도 많았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풍력 테마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정부 말 신재생에너지가 화두로 떠오른 데 이어 녹색성장을 미래 국가 비전으로 꼽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며 2007년에서 2008년 상반기까지 풍력발전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는 유니슨(223%), 평산(220%) 등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풍력산업이 정부 뜻대로 활황세를 보이지 않은 탓에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됐다. 유니슨은 2010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내 한국거래소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태고, 평산은 2012년 자본전액잠식 등 이유로 상장폐지 됐다. 정부의 성장동력이 테마가 돼 주가는 끌어올렸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실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셈이다.

단기 테마에 휘둘리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지 못한 코스닥 기업들의 앞날은 험난하다. 한 증권사 분석가는 “완제품보다 부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은 중소·벤처기업의 특성상 기술이 독보적이지 않으면, 대기업 상대의 협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성장이 지난 2~3년 새 지지부진해진 상황은 걱정을 키운다.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대기업 쪽의 단가 인하 압력 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경제의 리스크(위험) 요인을 묻는 질문에 응한 코스닥 시이오 74명 가운데 18%가 단가 인하 압력 등 대기업의 횡포를 가장 큰 부담요소로 꼽았다.

암울한 15년을 보낸 코스닥 시장에 올해 들어 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 23일 기준 코스닥은 589.31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시가총액인 156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기관투자가 입장인 이승준 삼성자산운용 그로스주식운용 본부장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대기업 성장이 정체상태인 상황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 때문에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신성장산업에 속한 코스닥 소형주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테마도 형성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핀테크(금융+정보기술)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한 뒤, 올해 들어 23일까지 관련 종목으로 꼽힌 코스닥 기업 라온시큐어 주가는 28.4% 상승했고, 케이지(KG)이니시스도 39.4% 주가가 올랐다. 다음카카오 주가도 13.5% 올랐다. 최현재 유안타증권 투자분석팀장은 “핀테크의 경우 이미 미국과 중국 등 성공 사례가 있는 만큼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테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약한 훈풍 속에서도 경계감은 여전하다. 시장의 체질 개선이라는 미결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다. 개인투자자들로선 여전히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 가치가 아닌 기대감에 따른 급등락은 개인투자자의 실패로 귀결되고, 이는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 한 증권사 분석가는 “코스닥 활황세에는 검증되지 않은 기대감도 상당 부분 끼어들어 있다고 본다”며 “수많은 기업을 던져놓고, 테마에 휘둘리다 몇 개 기업이 성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투자에 실패한 더 많은 개인의 신뢰가 떠나버린다는 것이 코스닥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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