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최저임금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과 월 209만원을 요구하는 회견문을 읽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재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연봉 6천만원 이상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5년간 동결하자고 주장했다. 그 돈을 청년실업 해소와 협력업체 직원 처우 개선에 쓰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계가 노동시장 불균형의 근본 원인인 대중소기업 양극화 등 경제민주화 이슈는 해결하지 않고 노동자 몫을 쪼개는 데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 인사말에서 “노사정위원회는 3월말 합의를 목표로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를 진행 중”이라며 “고용경직성 완화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안정화가 합의문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형식적 합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봉 6천만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해 그 재원으로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과 청년고용에 활용하는 방안 같은 내용이 논의돼야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의 발언은 노동시장 불균형 문제의 초점을 노동자 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이 돈을 쌓아두고 고용은 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업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은 묻지 않고 노동자한테만 짐을 지운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총은 정규직도 업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서 해고를 더 쉽게 하자는 주장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노동 부문 개혁안 마련을 위한 약속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며 특위의 합의를 촉구했다. 하지만 노사정 특위의 협상 테이블엔 민주노총이 아예 빠져 있어 출발부터 논란이 거세다.
한국노총은 김 부회장의 발언에 성명을 내어 “(김 부회장 주장은) 수조원에 이르는 재벌 대기업의 배당 잔치와 관련한 국민적 비난 여론에 대한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의 12배를 넘는 임금은 금지시키는 ‘최고임금제’를 도입하자고 역제안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도 “수억원씩 연봉을 받았던 사용자는 이제부터라도 평생 임금을 대폭 깎아 저임금 노동자한테 주면 될 것”이라며 “발상 자체가 사용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게 아니라 ‘이 노동자에게 빼앗아 저 노동자에게 주겠다’는,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동시장 불균형의 근본 원인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로 하청업체나 대리점 등이 적정 수익을 얻지 못해 고용을 늘리지 못하거나 임금을 올려주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으로 인한 수익을 대기업 정규직이 독식한 게 아닌데 이들만 양보하라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훈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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