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008년 2월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네치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청와대-석유공사 2008년 회의 문건
유전개발-SOC 사업 연계
자금조달 문제 불거지자
‘대통령 인식’ 앞세워 추진 독려
석유공사, 현재 수천억 손실
유전개발-SOC 사업 연계
자금조달 문제 불거지자
‘대통령 인식’ 앞세워 추진 독려
석유공사, 현재 수천억 손실
실패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계약 추진 당시 청와대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진행 현황을 보고받고, 계약 추진 방향을 제시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해외자원개발 총괄 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엠비(MB) 정부 관계자들의 최근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이 전 대통령과 엠비 정부 관계자들의 ‘책임론’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9일 확보한 석유공사의 ‘이라크 쿠르드 엠오유(MOU·양해각서) 사업 관련 회의내용 보고’, ‘이라크 쿠르드 엠오유 사업 관련기관 회의’ 등의 문건을 보면, 청와대가 2008년 2월14일 한국석유공사와 쿠르드 자치정부 간에 체결한 유전개발-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 계약 진행 현황을 보고받고 ‘대통령의 인식’을 앞세워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을 보면, 2008년 4월13일 당시 김동선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과 2명의 행정관은 석유공사 송아무개 신규사업1처장을 불러 2시간30분 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민간기업들의 금융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석유공사의 설명에 김 비서관은 “대통령께서는 쿠르드 엠오유를 언론 보도와 같이 유전개발-에스오시 사업이 연계되어 대형 광구를 확보하게 된 사업으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자금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음’을 (대통령이) 보고받을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 표시”했다고 나타나 있다.
김 비서관은 “금융조달 문제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면서도 “에스오시 사업이 지연·취소될 경우 한국 기업의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 참여에 차질 발생 가능성이 있을지 우려된다. 공사가 쿠르드 정부 측과 사업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 필요시 에스오시 사업과 분리해 단독적인 사업참여 가능성도 협의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회의 5일 뒤 지식경제부에서는 윤상직 당시 자원개발정책관의 주재로 석유공사와 민간기업 쪽 인사가 참여한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이는 사실상 이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는 수준으로 쿠르드 사업을 진행할 것을 종용하는 압박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회의는 엠오유 체결 뒤 쿠르드 자치정부가 유전개발과 원유 확보를 조건으로 에스오시 건설사업비 약 21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석유공사는 “자금 문제는 민간기업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이뤄졌다. 결국 그해 11월 석유공사는 에스오시 사업비를 떠안는 쪽으로 쿠르드 정부와 본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회의에서 본계약 체결 방향이 가닥이 잡혔다”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은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의 투자유치 티에프(TF)’가 관여하고 2월14일 엠오유 체결에 앞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이 전 대통령이 한국을 방한한 쿠르드 자치정부 네치르반 바르자니 총리를 만나 협력을 약속해 ‘엠비 자원외교 1호’로 불리는 사업이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최대 20억배럴의 원유와 10억달러 상당의 건설사업을 수주했다고 대대적으로 알린 바 있다. 현재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은 4400억원을 투자했지만 3개 광구에서 철수해 투자금액만 최소 3억달러(현재 332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최 의원은 “청와대와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업임이 드러난 것으로, 이 전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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