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투자활성화는 기획재정부 소관이다. 왜 (공정위)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느냐?”(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기재부인지 산업통상자원부인지 헷갈린다.”(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향해 터져나온 소리다. 김 부위원장이 “대한상의나 전경련 등 경제계 인사를 만나다 보면 건의사항으로 증손회사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날 법안소위가 검토한 법안 가운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있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제어하는 현행법을 손보려는 개정안이다. 여기엔 증손회사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행법은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 등으로 이뤄진 기업 지배구조에서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하지만 개정 법안들은 지분 100% 규정을 지분 20%(비상장은 40%)로 낮추어 사실상 규제를 거두어버리거나(김상민 새누리당 의원 안), 중소기업 및 사회적 기업과 공동출자하거나 특정 연구개발비가 5% 이상일 때로 국한해 지분 규제를 완화해주는 또다른 예외(김종훈 새누리당 의원 안)를 담았다. 결국 지주회사 체제에서도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기 쉽게 해주는 내용인 셈이다.
국회의원들은 공정위에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개정이 왜 필요한지”(신동우 새누리당 의원), “법률이 개정되면 투자활성화가 이뤄지는 구체적 사례가 무엇인지”(이종걸 새정치연합 의원) 등을 물었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은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의 요구를 얘기할 뿐 특정 기업 등 구체적인 사례는 얘기하지 못했다. 공정위 신봉삼 기업집단과장도 끼어들었지만 일반적 사례 얘기를 꺼내는 데 그쳤다. 공정위가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경제활성화를 앞세우고 나섰는데, 그래야 할 근거조차 제대로 대지 못한 셈이다.
1999년 허용된 지주회사제도는 2007년 증손회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7년 뒤인 지난해 초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 지분 참여에 한해 증손회사 지분 50% 보유를 예외적으로 허용해 구멍을 냈다. 투자활성화가 이유였다. 하지만 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 지에스칼텍스나 에스케이종합화학 등은 투자나 일자리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올해 다시 증손회사에 대한 예외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이런 규제 완화의 성과에 대해서는 “산업부에 문의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누리집에서 “그동안 시장경제 파수꾼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해왔다. 이제 대-중소기업 간, 생산자와 소비자 간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균형추 역할을 확대해 ‘공정한 사회’ 구현에 앞장서고자 한다”고 인사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날 공정위는 파수꾼이나 균형추 역할보다 경제단체 대변인에 가까웠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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