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 열려라 경제
지난 4월30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여전히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알 수 있다. 제조업 생산은 4년째 정체되어 있으며, 소비나 투자 지표에서도 침체된 우리 경제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수출이 늘어나고, 그다음에는 고용이 증가하고 소득이 늘어나 내수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부질없는 희망이었음을 지난 몇년간 보아왔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수출 시장인 미국이나 중국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재의 경제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침체를 돌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현재 산업재 제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재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수출산업을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4년째 월 500억달러를 넘어서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은 주력 수출품목인 전자부품, 산업용 전자제품,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에서 몇년째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이전에는 이들 산업의 수출이 호조를 보였지만, 그것은 중국의 수출과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소재, 부품, 장비 등의 수요가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더 이상 수출과 투자를 통한 성장을 하기 어려워졌고, 대신 소비 확대를 통한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저성장 넘어서려면 성장 방식 전환해야
소비 확대 통한 성장단계 진입한 중국
산업재→소비재로 수출 구조조정 나서야
수출로 번 돈 내수로 가는 균형회복 필요
분배에서 ‘경기의 규칙’을 바꿔야
이는 우리나라의 과거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올해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나라의 1990년 부근과 비슷한 소득 수준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자. 최저임금제와 국민연금이 시행됐고, 해외여행과 해외유학 자유화 조처 등이 있었던 것이 1980년대 말이다. 즉, 80년대 말은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복지와 양질의 소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 행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해외 소비 급증의 계기가 된 것은 당연했겠지만, 자동차와 같은 내구소비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가계소비에서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말이다. 문화 관련 소비의 비중이 늘어난 것도 그때였다. 거시경제로 보면 투자 비중이 줄어들고 소비 비중이 늘어나는 시점과도 일치한다. 그 결과, 90년대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경제 캠페인은 과소비 추방이었다.
이런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를 생필품으로 한정하면서 저축과 일만 하던 사람들이 소비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말의 우리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자부터 가난한 사람까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소득 수준 차이가 너무 커 1인당 소득만으로 당시의 우리나라와 지금의 중국을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중국에서도 소비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우리가 겪은 길을 중국도 겪을 것임을 시사한다.
중국이 수출과 투자를 통한 성장 대신 소비를 통한 성장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우리나라가 왜 수출산업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지 명백히 설명해준다. 물론 이미 이런 조짐들이 우리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여행객들인 유커를 상대로 이미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가공식품이나 화장품 등 소비재를 생산하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소비 확대 추세는 거의 20년 이상 지속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소비 확대에 따른 영향도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에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왜 지금은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둘째,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기업이 수출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많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근로자는 이 돈으로 소비를 하면, 자영업자도 같이 돈을 버는 흐름이 비교적 잘 작동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는 수출 호조가 내수 호조로 이어지지 못했다. 수출이 잘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수출만 잘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출도 잘되지 않고 있으니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수출에서도 중국의 소비 성장을 누릴 수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수출에서 벌어들인 돈이 내수의 호조로 연결되는 고리도 복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앞으로 소비재 수출과 외국인 상대 서비스업에서 돈을 벌어들이더라도 여전히 내수 침체로 저성장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소득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장 방식의 전환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상당한 구조조정 노력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수출산업의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수출과 내수의 균형 회복은 기업이나 가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분배에서 ‘경기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전민규 한국투자금융지주 글로벌리서치실장
소비 확대 통한 성장단계 진입한 중국
산업재→소비재로 수출 구조조정 나서야
수출로 번 돈 내수로 가는 균형회복 필요
분배에서 ‘경기의 규칙’을 바꿔야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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