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고덕국제화계획지구의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기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작년 한 해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해였다. 그럼에도, 좋은 실적을 내서 임원 승진을 하신 여러분은 정말 능력있는 인재들이다. 올해도 더 열심히 도전하자.”(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임 임원 만찬사)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나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직위는 없지만 삼성을 대표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1991년 사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유학기간을 빼면 줄곧 삼성전자 소속으로 일해왔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5월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회장의 공백이 계속되는 동안 아들인 이 부회장은 전자를 뛰어넘어 금융·바이오 등 삼성의 주요 사업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며, 그룹의 대표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이 부회장은 자주 외국 출장을 떠나거나 유명 인사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행보가 대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독보적 경영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삼성전자 실적 반등의 기대가 걸린 ‘갤럭시S6·엣지’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 쪽은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꺼린다. 이 부회장도 ‘이재용폰’이라는 평가에 대해 “임직원들이 노력한 제품”이라며 자신과의 직접 연결을 마다한다.
그럼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삼성 안에서 두루 인정한다. 삼성 쪽은 이를 이건희 회장 체제의 특징인 ‘오너 리더십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조화’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오너 리더십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갤럭시S6·엣지’ 관련 투자가 꼽힌다. 이 관계자는 “기존 ‘갤럭시S5’까지 강점으로 꼽히던 탈착식 배터리를 포기하고 메탈 소재를 채택한 것은 신종균 사장 홀로 판단할 수 없다”며 “메탈 케이스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1억원짜리 기계 2만대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2조원대 투자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공백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나 큰 변화에 이 부회장의 결정이 아주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전문경영인의 결정에 대한 ‘확인’으로 칭했다. 장 교수는 “외국기업의 인수·합병을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결정한다면 이를 ‘확인’하는 게 이 부회장의 현재 위치”라고 말했다.
실제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는 매달 금융권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등 그룹 전반에 걸쳐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을 삼성의 핵심 사업으로 보고 있다”며 “이 핵심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 형태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지만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의 직접적인 보좌를 받는 대신에 각 주요 계열사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권한은 가졌으나, 이를 행사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윤곽이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 리더십에 시선이 모인 지난 1년간 삼성토탈·테크윈 등 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가 한화에 매각되고 각 계열사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등 숨가쁜 변화가 진행됐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회사 임직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련의 변화에 “계열사 매각과 사람을 자르는 게 이재용 경영 방식이냐”라는 불만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지난 1년간 구체적으로 경영에 대해 발언한 것은 ‘모바일 에티켓’을 빼곤 두드러진 게 없다. 이 때문에 아직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이르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갤럭시S6의 실적이 당장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성과라고 할 수는 없다”며 “나중에 더 큰 그림에서 경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