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뒤엔 아날로그가 숨쉰다
‘역사속으로’ 전망과 달리 실제론 혼합·접목 많아
반도체시장 20% 점유, DTV·위성방송·디카등 핵심기술 건재
“디지털·아날로그 ‘상생’ 발전해나갈 것”
반도체시장 20% 점유, DTV·위성방송·디카등 핵심기술 건재
“디지털·아날로그 ‘상생’ 발전해나갈 것”
‘디지털 텔레비전, 디지털 카메라….’ 쉴새없이 쏟아지는 최신 전자기기들은 대부분 디지털 방식이다. 온갖 종류의 전자기기들이 판치는 ‘디지털 시대’에는 아날로그 기술과 소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이들 기기의 작동 방식과 핵심기술은 여전히 아날로그인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는 데이터를 0과 1이라는 수치로 바꿔 처리하는 디지털과는 달리 사람의 목소리와 같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신호 체계를 말한다.
반도체는 모두 디지털 방식인가?= 고집적화와 대량생산 등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날로그 반도체는 여전히 유효하게 쓰인다. 일본의 중소 전자부품 업체들은 오히려 아날로그 반도체 개발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1950억달러로, 이 중 센서를 포함한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은 340억달러로, 20%에 육박한다. 실제로 대표적인 디지털 텔레비전인 엘시디와 피디피 텔레비전을 뜯어보면, 집적회로 덩어리인 영상보드(기판)에는 뜻밖에도 아날로그 집적회로(IC)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디지털 텔레비전 제조업체인 덱트론의 홍재만 연구실장은 “디지털 기기가 처리한 정보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아날로그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위성방송의 경우 텔레비전 수상기에서 아날로그 신호로 바뀌어야 볼 수 있고, 디지털 통신망을 타고 전해지는 휴대전화의 음성은 아날로그 음성으로 바꿔야 들을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디브이디(DVD) 레코더의 핵심 기술인 광학 및 제어 기술, 캠코더에서 물체의 상을 투영하고 빛의 신호를 이미지 센서로 전달하는 렌즈와 광학 줌 등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이다.
디지털-아날로그 혼재= 전자업계에선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기능을 혼합하거나 접목해 쓰는 일이 늘고 있다. 디지털 텔레비전의 디스플레이를 작동시키는 최말단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DDI)은 디지털로 처리된 영상신호를 엘시디 또는 피디피 화면에 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일반적인 데이터 처리는 디지털 회로가 맡지만, 화면에 다양한 색상을 보여주는 엘시디 또는 피디피를 구동하는 전압(또는 전류)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회로(DA컨버터)가 필요하다. 반대로 카메라폰과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에 장착된 이미지 센서는 자연의 영상에서 전해지는 아날로그 신호를 변환장치(AD컨버터)를 통해 디지털화시키는 핵심 칩이다.
삼성전자는 네모꼴 형태의 휴대전화 글자판을 과거 다이얼 전화 방식인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곧 선보일 예정이다. 소비자들의 아날로그 향수에 기댄 마케팅 전략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이 통하는 것은 각종 전자기기에서 아날로그 기술이 필요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날로그 없는 디지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휘원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과장은 “디지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아날로그”라며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서로 접목하거나 상호보완적 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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