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5억원 규모의 전기 트랜스포머(변압기) 생산 중소기업 중원하이텍은 최근 어음할인 비용을 아끼게 됐다. 엘에스(LS)산전 2차 협력사로, 1차 협력사로부터 최대 60일 만기의 어음을 받아 연 4% 후반 금리의 할인 수수료로 만기 전 현금화해왔는데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 비용을 절약하게 된 것이다. 이 시스템은 2차 이하 협력업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신용을 활용해, 대기업한테서 받은 외상매출채권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차 이하 협력업체가 1차로부터 받은 어음을 높은 수수료를 내고 현금화해야 하고 연쇄 부도 위험에 놓일 수도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다.
기존에는 원청 대기업이 현금성 외상매출채권을 1차 협력사에 지급하면, 1차 협력사는 대개 전자 어음으로 2차 협력사에 결제해줬고 2차도 3차에 같은 방식으로 결제해줬다. 이런 경우 1차 협력사가 받은 외상매출채권은 대기업의 신용도로 현금화가 가능하지만, 2차 이하 협력사가 받은 어음은 신용도가 낮은 탓에 높은 금리 부담을 져야 했고 부도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상생 시스템에서는 모든 대금 결제가 대기업이 발행한 외상매출채권을 바탕으로 진행돼, 1차 협력사가 누리던 결제 수단의 이점이 2차 이하까지 확산된다. 2013년 8월부터 엘에스산전과 우리은행 등에서 도입했는데, 지난달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전체 대기업으로 확산시키기로 했다.
엘에스산전 2차 협력사 중원하이텍의 이규남 대표는 금리 인하 효과도 있지만 자금 흐름의 예측 가능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지급이 정확히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와닿는다. 영업부 직원이 수금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1차 협력사에도 납품하던 이 대표는 재작년 ‘곧 줄 테니 하루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업체 부도로 손해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상생 시스템에서는 결제대금이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은행 계좌에 예치된 뒤 만기 때 자동 처리되고, 은행의 상환청구권도 없다. 그는 “시스템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니 2차 이하 업체는 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케이티의 2차 협력업체 유니넷텍은 실제 자금 유동성에서 이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사례다. 1차 협력사인 케이티 이엔에스(ENS·현 engcore)가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유니넷텍 자금 담당 김형기 상무는 고민에 빠졌다. 김 상무는 “1차 협력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만기 전 현금 융통이 어려울 뻔했는데 지난 1월부터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게 돼 문제가 바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기존에 대체로 5% 후반 금리로 할인 수수료를 내던 유니넷텍은 케이티의 신용도를 이용해 3%대로 금리가 낮아져 비용도 절감하게 됐다.
산업연구원에서 연구해보니 10대 그룹 100개 대기업이 이 제도에 참여할 경우 2차 협력업체는 연 1795억원(평균 27%), 3차 협력업체는 2587억원(평균 49%) 비용을 절감하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1차 업체의 동참이 가장 큰 관건으로 꼽히는데, 제도가 제일 활성화한 엘에스산전은 1차 협력사 업체 평가에 가점을 주는 등 혜택을 제공한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할 때 시스템 참여 실적을 반영하고, 세액공제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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