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리포트]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 도입 쟁점
국내에서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의 전면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면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은행들로서는 그동안 부담하지 않던 주택가격 하락 위험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를 당장 전면 도입하지 않더라도 저소득층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공적자금 대출을 우선적으로 활용하거나 가격이 낮은 주택에 사는 실소유자 대출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LTV규제 있는데…실효성 있나?
“언제든 닥칠수 있는 위험에 대비
은행들 위험부담도 적은 편” 투기 부추길 우려?
“채무자 고의 연체 가능성 낮아” 책임한정 대출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내 도입에 신중한 쪽의 주된 논리는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국은행의 핵심 간부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책임한정 대출 제도를 도입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엘티브이는 대출액을 담보가치로 나눈 비율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이 규제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규제 비율은 70%다.
실제로 <한겨레>가 금융감독원을 통해 받은 은행권 엘티브이 현황을 보면, 3월말 현재 전국 기준 엘티브이 평균 비율은 52.7%에 그친다. 지역별로 봐도 서울은 49.2%, 부산 55.0%, 대구 52.8%, 인천 57.3% 수준이다. 전국 광역시·도 중 제주도가 57.6%로 가장 엘티브이가 높다. 실제 거래에선 대출자들이 집값의 절반 정도까지만 대출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비율을 고려하면 집값이 절반 정도 폭락을 해야 책임한정 대출 제도의 도입 효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충격 때도 집값은 평균 10% 정도 내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평균 엘티브이가 50%대에 그친다는 점만 주목해선 곤란하다. 여전히 규제 한도인 70%에 육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재정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규제(LTV 70%) 한도까지 받는 대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지적으로 주택가격이 30% 이상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책임한정 대출 도입 신중론을 반박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64.2%(2014년 말 자금순환표 기준)에 이를 정도로 가계의 부채 부담이 큰 상황에서, 가계의 주택대출 관련 위험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전세를 포함한 실질 엘티브이 비율은 2013년 6월말 기준 75.7%(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이른다. 더군다나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35.5%(2014년 말 기준)에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주택가격 급락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위험요인이라는 점에서 사전적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핵심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장치는 통상 심각한 위기를 겪은 뒤 사후약방문 형태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택가격 급락 경험이 없는 우리로선 선제 위기대응 차원에서라도 주택 실소유자 중심으로 책임한정 대출 도입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낮은 엘티브이로 인해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은행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지 않다고 강조한다. 유승동 상명대 교수(경제학)는 “엘티브이 규제로 인해 책임한정 대출 도입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는 논리적이지 않다. 외려 엘티브이 규제 덕분에 국내 은행들이 짊어져야 할 위험부담이 미국 은행들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택거래 관행을 고려할 때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은행·비은행 담당)는 “주택거래 추이를 보면 통상 5~6년을 주기로 매매가 일어난다. 미국의 책임한정 대출 제도는 장기 소유와 실거주를 특징으로 하는 주택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고 말했다.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매매이득을 노린 주택 투자자에게 책임한정 대출 제도의 혜택을 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채무자들이 대거 ‘고의 연체’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최성일 금감원 감독총괄국장은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고의 연체로 집을 은행에 넘기는 게 금전적으로 이익일 수 있더라도, 집을 한 채 소유한 채무자의 경우엔 이런 선택을 할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고려해 금융위의 연구용역 보고서(비소구 주택담보대출 제도 도입 타당성 연구)는 실소유자 중심으로 책임한정 대출을 선택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밖에 국내 은행들이 주택가격 하락 등의 위험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옵션 가격(가격 하락 위험 등을 숫자로 표현한 것)은 과거 20~30년 주택시장 관련 데이터를 토대로 산정할 수밖에 없는데, 향후 20~30년도 주택시장이 같은 흐름을 보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위험을 과대평가해 책임한정 대출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선 금융감독 당국이 적극적 관리감독을 통해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현재 담보가치에 대한 평가만으로 주택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의 영업 관행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책임한정 대출 도입이 은행에 적절한 위험부담을 안김으로써 리스크 관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능력을 강화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언제든 닥칠수 있는 위험에 대비
은행들 위험부담도 적은 편” 투기 부추길 우려?
“채무자 고의 연체 가능성 낮아” 책임한정 대출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내 도입에 신중한 쪽의 주된 논리는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국은행의 핵심 간부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책임한정 대출 제도를 도입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엘티브이는 대출액을 담보가치로 나눈 비율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이 규제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규제 비율은 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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