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주총 의결권 표 대결 국면 돌입
지분 5.76% 물량 6743억에 넘겨
“원활한 합병 마무리 위해” 밝혀
우호지분 합쳐 20% 가까이 확보
처분 행위 효력 놓곤 판례 엇갈려
“또다른 공격 명분 준 악수” 지적도
지분 5.76% 물량 6743억에 넘겨
“원활한 합병 마무리 위해” 밝혀
우호지분 합쳐 20% 가까이 확보
처분 행위 효력 놓곤 판례 엇갈려
“또다른 공격 명분 준 악수” 지적도
삼성물산이 10일 자사주(보통주) 전량인 5.76%(899만557주)를 케이씨씨(KCC)에 주식시장 장 마감 이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세일) 방식으로 6743억원에 넘기기로 했다. 하루 전만 해도 “자사주 매각은 없다”는 태도에서 전격 선회한 것으로,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표 대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이에 대응해 엘리엇이 추가적인 대응에 나설지 촉각이 쏠린다.
케이씨씨의 취득 금액은 주당 7만5천원으로, 계약 예정일은 11일이다. 앞서 8일 케이씨씨가 시장에서 사들인 지분을 합치면 이 회사의 삼성물산 지분은 총 5.79%가 된다. 케이씨씨는 이날 공시에서 지분 취득 목적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통한 시너지 제고 및 전략적 제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의 ‘백기사’로 나섰음을 공식화한 셈이다.
■ 삼성, 표 대결 총력태세로
삼성물산은 이날 자사주 매각에 대해 “원활한 합병을 마무리하기 위한 우호지분 확보”라고 밝혔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임원은 “엘리엇이 합병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국면에 접어들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다고 공표했으나 또다른 엘리엇 쪽 우호지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불가피하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자사주를 매각해 방어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자사주 매각으로 삼성물산은 삼성에스디아이(SDI·7.39%),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삼성복지재단(0.15%) 등이 가진 지분을 합친 13.82%에 더해 케이씨씨 지분까지 총 19.61%의 우호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확보하려면 지난 9일까지 주식을 매입해야 하지만 장외거래는 주주명부 폐쇄일(11일)의 밤 12시까지 가능하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삼성 쪽이 매우 급한 듯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이 다급하게 방어에 나섰음에도 백기사로 나선 케이씨씨 지분이 이번 싸움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은 남는다. 지난 2006년 대림통상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각과 관련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회사 전체의 재산인 자사주를 대주주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매각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다른 법원에서는 이런 행위를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김화진 서울대 교수(법학)는 “자사주 매각과 관련해 결과가 다른 판례가 나와 있어 아직 불확실한 상태”라며 “의결권 확정지분을 놓고 법적으로 다툴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 삼성, 왜 다급해졌나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은 7월17일로 예정된 합병 관련 임시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을 위한 다급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자사주 매각을 통한 경영권 방어에 대해 법적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의 초조감이 두드러진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자본시장실장은 “(케이씨씨의 등장으로) 표 대결로 갈 경우 삼성 쪽 승산이 높아졌다”면서도 “자사주까지 매각한 것을 보면 서두르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사태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주총에서 지분 기준 참석률을 70%로 가정할 때 3분의 1인 23%가 반대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은 7.12%에 불과하지만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0.35%)나 일성신약(2.05%) 등도 합병비율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합병 삼성물산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충당할 자금으로 준비해둔 1조5천억원(삼성물산 보통주 지분의 약 17%에 해당)을 넘는 주식매수청구가 들어오면 역시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이번 판단을 ‘악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이 회사 재산인 자사주를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라는 사적인 이익에 동원해 엘리엇에 공격의 명분을 제공했다”며 “설사 이번 주주총회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향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재편 과정을 고려하면 악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승계를 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시장과 사회에서 경영권 확보의 정당성을 승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의 박유경 이사도 “외국 대기업의 경우 합병 과정이 순탄치 않아 늘 논란이 생기지만 주주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며 “많은 주주들의 의견과 달리 행동하는 삼성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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