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들의 설비 투자 촉진을 위해 지난해 도입한 외화대출 제도의 혜택이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용도로 만든 대출 제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올해부터는 중소기업 몫을 별도로 배정했다고 밝혔다.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활용한 저리의 외화대출 제도의 혜택이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현재 외화대출의 잔액(대출한도 150억달러)은 68억3000만달러인데, 이 가운데 65억7000만달러(96.2%)를 대기업들이 가져갔다. 반면 중소·중견기업이 가져간 규모는 2억6000만달러(3.8%)에 그쳤다.
외화대출은 국가 신용도를 바탕으로 한 채권 발행으로 조성한 기금을 재원으로 삼는다. 시중은행이 외평기금 수탁기관인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을 통해 저리로 받아 기업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국가보다 신용도가 낮은 은행이 외화를 조달해서 파는 일반 외화대출을 받거나, 기업이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해 외화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도 지속적인 엔저 현상에 따라 환 부담이 커진 기업들의 외화 자금 조달 부담을 국가의 신용도를 활용해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지적에 대해, 기재부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국외 시설재 수입 등에 대한 수요가 적은데다, 환 위험 관리능력 부족 등으로 외화대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대기업에 편향된 의도적 자원 배분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대출 신청을 하지 않아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뜻이다. 신중범 기재부 외화자금과장은 “이 제도는 처음부터 중견·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 달리, 정부도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우대 조처로 대출은행들이 좀더 적극적 대출 영업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는 중소기업과 시설재 수입 용도 관련 대출에 35억달러를 별도 할당하는 한편, 금리 조건도 중소·중견기업에 종전보다 추가로 0.05%포인트를 더 내려주고 있다. 이전에도 중소·중견기업 대출금리는 대기업보다 0.05~0.1%포인트 낮았다.
세종/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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