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성가 지분 3조어치 보유
정몽진 회장 대부분 재무적 투자
실제로 수천억 차익 실현하기도
“매출처 지분 확보로 교섭력 길러”
친족·지인 기업에 투자 범위 한정
‘오너리스크’ 위험 가능성도 상존
정몽진 회장 대부분 재무적 투자
실제로 수천억 차익 실현하기도
“매출처 지분 확보로 교섭력 길러”
친족·지인 기업에 투자 범위 한정
‘오너리스크’ 위험 가능성도 상존
지난 10일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합병 반대’ 표명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던 가운데 케이씨씨(KCC)라는 삼성의 우군이 등장했다. 케이씨씨가 10일 삼성물산의 자사주 5.76%를 6700억원을 들여 전량 매입하고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 합병 찬성 쪽에 표를 보태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엘리엇의 공세에도 삼성물산 합병 성공을 전망하는 이들이 늘었다. 건자재 회사 케이씨씨의 ‘금융투자’가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끈 배경이다.
케이씨씨는 선박이나 자동차용 도료·유리·건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각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평범한’ 제조업체로 보이지만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 총자산 8조3286억원 중 35%가량인 2조9213억원이 매도가능금융자산, 즉 다른 회사 주식이다. 케이씨씨가 ‘금융투자업체’로 불리는 이유다.
케이씨씨의 지분투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됐다. 2000년 3월 현대중공업 지분 0.15%(6억원) 매입을 시작으로 2003년 6월에는 현대자동차 주식 1.09%(720억원), 현대모비스 지분 1.1%(272억원), 현대산업개발 지분 4.72%(278억원)를 취득하는 등 주로 범현대가 쪽 주식을 매입해 왔다. 올해 1분기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식도 현대중공업 5.31%, 현대산업개발 2.5%, 한라 12% 등이다. 케이씨씨의 창업주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동생인 정상영(79) 명예회장이고 현재 회장은 아들인 정몽진(55)씨로, 투자한 기업 오너들과는 친족관계로 얽혀 있다. 케이씨씨는 2003년 경영권 분쟁이 있었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무적 목적의 투자를 해왔다.
케이씨씨의 재무적 투자는 성공한 사례가 많다. 케이씨씨는 2008년 한라그룹의 만도 재인수를 돕는 컨소시엄에 2670억원을 투자해 만도 지분(29.99%)을 확보했다. 이를 2010년 1445억원어치(12.93%), 2011년에 6370억원어치(17.06%) 팔아 5145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 거래로 확보된 유동성은 제일모직 지분에 재투자됐다. 2011년 12월 제일모직(당시 삼성에버랜드) 주식으로, 당시 금산법에 따라 삼성카드가 매각해야 했던 제일모직 주식 17%를 7739억원에 사들였다. 이 지분의 일부(6%)를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상장 때 3975억원에 팔아 1300억원의 차익(수익률 45%)을 남겼다. 제일모직·삼성물산·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현대산업개발·현대종합상사·한라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요 7개 기업 지분의 투자수익률(취득액 1조5천억원)도 24일 기준(3조9천억원) 100%가 넘는다.
지분 투자는 사업적 측면에서도 유효하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주식 매입 때 한국투자증권은 “케이씨씨 매출 중 절반가량은 계열사와 현대 쪽 매출로, 회사가 주요 매출처 지분 확보로 교섭력을 길러왔다”며 지분 매입을 긍정적으로 봤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본업에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유동자금을 금융투자에 활용하는 전략이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꽤 많은 성공 사례에도 케이씨씨의 다른 회사 지분 매입 때 시장의 반응이 반드시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11월20일 케이씨씨가 현대중공업 지분을 3천억원어치 매입하자, 케이씨씨 주가는 6%나 떨어졌다. 이날 현대삼호중공업이 케이씨씨 지분을 대량 매각한 탓도 있지만, 케이씨씨의 실적과 현대중공업 실적이 동반 부진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주식을 사들이는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반영됐다. 지난 10일 장마감 뒤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을 공시하자, 11일 케이씨씨 주가는 2.58%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케이씨씨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현대가와 삼성가에 쏠려 있다는 점이 한몫한다. ‘기업 위기 등 저평가 시점에 싼값에 사서 장기 보유’하는 케이씨씨의 전략은 일견 ‘가치투자’로 보이지만, 친족과 지인 기업으로 투자 범위가 한정돼 있어, ‘투자’와 ‘지원’의 경계가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몇 차례의 투자 성공에도 시장은 케이씨씨의 지분투자가 언제든 ‘오너 리스크’로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케이씨씨의 지분 투자는 정몽진 회장의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투자다. 위험한 투자까지는 아니지만 전문적 투자라고 보기에는 투자처가 친족·지인 기업으로 한정돼 있다. 재벌들간 ‘이너서클’에서만 정보와 투자 기회가 폐쇄적으로 교환되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KCC가 보유한 주요 기업 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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