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한겨레 자료사진
면세점 선정 가능성 낮게 본 분석에 “보고서 내려라”
“무슨 근거냐, 영업 방해다” 항의
“언론사에도 잘못 알려라” 주문
독립적 투자보고서 작성 위축 우려
금감원, 재발 방지 대책 강구 나서
“무슨 근거냐, 영업 방해다” 항의
“언론사에도 잘못 알려라” 주문
독립적 투자보고서 작성 위축 우려
금감원, 재발 방지 대책 강구 나서
지난 24일 저녁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ㄱ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의 ㄴ부사장으로부터 거센 항의전화를 받았다. ㄱ연구원이 지난 15일 낸 서울시내 면세점 선정 관련 기업분석 보고서 때문이었다. ㄱ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정부가 7월 중순 선정 예정인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에스케이(SK)네트웍스와 신세계가 가장 유력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두 회사가 선정한 동대문·남대문 재래시장 입지가 관광객 방문에도 좋고 중소상인들과의 상생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ㄱ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경영능력·관광인프라·상생협력 정도 등 정부가 밝힌 면세점사업자 선정 기준과 언론에 공개된 정보를 종합해 점수를 매겼다. 에스케이네트웍스(949점), 신세계(833점), 신라(798점), 한화(669점), 이랜드(650점), 롯데호텔(639점), 현대백화점(570점) 순이었다.
ㄱ연구원은 “현대백화점 부사장이 전화를 걸어와 ‘무슨 근거로, 무슨 자격으로 이런 분석을 했느냐’고 묻더니 ‘영업상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온라인에 공개된 보고서를 삭제하고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사에도 연락해 잘못된 분석이라고 밝히라’는 요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백화점 쪽에서 ‘이틀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안 될 경우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현대백화점 김준영 홍보팀장은 “ㄱ연구원에게 (ㄴ부사장이) 전화한 것은 맞지만, 고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보고서의 평가항목 중 경영능력의 경우, 신용등급, 부채비율 등에서 우리가 훨씬 앞서는데도 점수가 낮게 나오는 등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 사업권 선정을 앞둔 상황에서 이미지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영업방해나 다름없다”고 해명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간부는 “사실이 틀렸거나 공시가 안 된 미공개 정보가 나갔다면 기업이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건은 애널리스트의 판단기준에 관한 사항으로, 설령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해당 보고서에 대한 판단은 시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실적·현황 등을 분석해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증권사 연구원(애널리스트)들이 해당 기업의 직간접적 압박 탓에 소신껏 보고서를 쓰기 어렵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차례 제기되었다. 실제 최근 각 증권사들이 금융투자협회 누리집에 공시한 ‘2014년 1분기~2015년 1분기 투자의견 비율’을 보면,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주식을 팔라’고 조언하는 ‘매도 보고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한화투자증권(4.6%)과 한국투자증권(3.3%) 등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들의 매도 보고서 비중은 1%를 밑돌았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40.9%),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코리아(38.3%) 등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이 내는 보고서와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올해 증권사들에 ‘매도 보고서를 내라’, 즉 기업에 불리한 내용이라도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보고서를 소신껏 쓰라고 독려했지만 증권사 연구원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해당 기업 주가에 불리한 요소를 보고서에 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선 해당 기업이 ‘출입금지’ 조처에 나설 우려가 있다. 기업이 아예 정보제공을 거부해 더 이상 해당 연구원이 보고서를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이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소송 비용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건이 증권사 연구원의 중립적인 보고서 작성 노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고, 사태 파악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장회사가 이런 식으로 압력을 행사하면 중립적인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협조요청을 하는 것을 비롯해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진 김수헌 유신재 기자 july@hani.co.kr
최근 1년간 국내외 증권사 매도 보고서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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