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폴 싱어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 AP 연합뉴스
“합병이 되면 건설 분야 등 겹치는 분야가 있어 구조조정이 두렵다. 그렇다고 합병이 무산되면 ‘벌처펀드’인 엘리엇이 수익 증대를 위해 구조조정을 요구할까 두렵다.”
삼성물산 간부급 사원의 말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목소리 큰 주주들의 공방이 시끄럽게 전개되는 사이에 이번 합병의 또다른 이해당사자인 해당 기업 직장인의 얘기는 묻혀 있다.
제일모직으로 넘어가는 삼성물산의 임직원은 8036명(3월말 기준)이다. 이들의 밥벌이에 이번 합병으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공식 설명은 최치훈 대표의 이메일 한통이 전부다. 일단 최 대표는 이메일을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법인은 인원 감축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는 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새 회사에 대한 비전과 합병계획 등을 언론 보도나 공식 홈페이지·블로그의 정보공개, 구전 수준에서 전해듣다 보니, 고용안정과 직결된 구체적인 경영 설명에 대해 목말라 하는 실정이다. 삼성물산의 또다른 직원은 “향후 계획은 잘 모른다. 그냥 합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쳐다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건설분야의 경우 직원이 8065명(삼성물산 6886명·제일모직 1179명)으로 조직이 비대해진다. 삼성물산은 이미 연초 800명을 상대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하반기에 또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회사가 합쳐지면 인력 조정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해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벌일 태세지만 직원들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처지다. 직원들이 양사 경영진이 밝힌 합병 취지에 동의한다 해도 표 대결에서 회사를 위한 도움을 줄 길이 없다. 2003년 하나로텔레콤은 회사와 함께 노조가 나서 엘지(LG)와의 표대결에서 이긴 적이 있다. 당시 노조는 소액주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들을 설득했고 이는 여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경우 노조가 없어 설령 경영진의 결정에 공감한다 해도 나설만한 조직이 없는 처지다.
직원과 소통없는 합병은 추가적인 잡음이나 향후 경영목표 달성의 어려움을 낳을 수 있다. 현재 삼성테크윈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한화그룹으로의 매각반대 활동에 나선 것과 전 에버랜드 직원들이 우리사주와 관련해 제일모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그 사례다.
최치훈 대표는 삼성물산의 ‘2015 지속가능보고서’에서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와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지속가능경영 활동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임직원’과 소통을 평소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합병에서는 주주 이외 다른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찾기 힘들다. 양사와 그룹이 합병의 주요 목표로 내세운 시너지 효과를 과연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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