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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창업자 자손들, 헤드헌터 업체들 동원해 검증”

등록 2015-06-30 17:51

독일의 세계적 가전기업 밀레의 공동회장인 마르쿠스 밀레(왼쪽)와 라인하르트 진칸이 30일 밀레코리아 창립 10돌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 가전기업 밀레의 공동회장인 마르쿠스 밀레(왼쪽)와 라인하르트 진칸이 30일 밀레코리아 창립 10돌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밀레 공동회장 진칸·밀레 기자간담회
공동 창업자 후손 2명·전문 경영인 3명이 공동경영
두 가문 후보 수십명 타기업 4년, 자사 1년 근무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 최종 검증 거쳐 후계자 지명
“창업자 자손이라고 경영능력까지 자동으로 타고나는 건 아니다. 자손이라도 후계자가 되려면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연습과 훈련을 통해 열정과 덕목을 키워야 한다.”

독일의 세계적인 생활가전 회사 밀레의 라인하르트 진칸 공동회장(사진 오른쪽)은 기업 후계자 자격으로 “반드시 경영능력이 겸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칸 회장은 밀레의 공동 창업자 라인하르트 진칸의 4대손이다. 또다른 공동 창업자 칼 밀레의 4대손 마르쿠스 밀레 회장(왼쪽)과 함께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둘은 30일 밀레코리아 창립 10돌을 맞아 우리나라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진칸 회장은 “오너라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뒤부터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창업자 가문 출신의 밀레 회장들은 후계자를 다른 기업에 보내 훈련시킬 때 ‘실수는 그 쪽에서 다 해보고 오라’는 농담을 건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경영능력 검증 절차와 혹독한 훈련과정 없이 창업자 후손이라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자동으로 후계자로 지목된다고 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밀레 회장 역시 “양 가문 모두에 후계자가 되려는 사람은 엄청 많지만, 능력과 자질 입증을 거쳐야 한다. 헤드헌터 업체 3곳이 동원돼 입체적이고 공정하게 경영능력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작은 도시 괴테슬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밀레는 가족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를 절묘하게 융합한 독특한 리더십으로 4대째 성공담을 쓰고 있다. 밀레는 두 창업자 가문에서 파견한 ‘회장’ 2명과 ‘대표’ 직함을 쓰는 전문경영인 3명으로 이뤄진 5명의 최고경영진이 회사를 공동으로 이끈다. 최고경영진은 1인 1의결권을 가지며, 만장일치가 아니면 어떤 사업도 추진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창업자 가문을 대표해 최고경영진에 들어가는 것은 철저한 경영능력 검증을 요구한다. 먼저 각 가문별로 후손 수십명이 경합해 후보를 선정하고, 후보자는 다른 기업에 취업해 4년 정도 근무해야 한다. 이후 밀레에서 1년 정도 일하면서 두 가문에서 3명씩 모두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의 최종 검증을 거치게 된다. 밀레는 창업자 후손 70여명이 지분 100%를 나누어 갖고 기업공개도 안 했지만, 100년 넘게 ‘강소기업’이자 독일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생활가전 전문 업체로 자리매김한 데는 이런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밀레 회장은 스위스 갈렌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자동차부품 전문업체 헬라에서 경영능력을 검증받았고, 진칸 회장은 베를린공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자동차 회사 베엠베에서 4년 근무했다. 밀레 회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밀레는 능력 없는 경영자로 인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위기가 몰아친 2008년에도 밀레의 전세계 매출은 1.24%밖에 줄지 않았고, 독일 내수시장에선 오히려 매출이 7.7%나 늘었다. 덕분에 밀레는 단 한명의 감원도 하지 않았다.

밀레는 1899년 벤처정신을 가진 두 젊은이의 만남으로 탄생했다. 칼 밀레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신기술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는데, 건축 재료와 버터크림 분리기를 만들어 팔다가 비슷한 또래의 청년 라인하르트 진칸을 만났다. 두 청년은 의기투합해 ‘밀레 & 씨에’라는 회사를 차렸고, 나중에 회사명을 밀레로 바꿨다. 초창기 밀레의 직원 수는 창업자들을 포함해 13명에 불과했다. 생산시설도 4대의 선반기계와 16마력짜리 증기엔진으로 돌아가는 1대의 드릴이 전부였다. 밀레는 5년 뒤 세계 최초로 나무세탁기를 발명했는데, 이를 통해 100년 기업의 터전을 마련했다. 지금은 진공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커피메이커, 냉장·냉동고, 병원·호텔용 살균 세척기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직원 수도 1만7000여명으로 늘었다. 2014 회계연도에 33억2000유로(4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진칸 회장은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이 100년 넘게 잡음 없이 협력하며 회사를 키운 비결에 대해 “두 가문은 이혼할 수 없는 부부와 같은 관계이다. 늘 이혼하지 않기 위한 최선을 방법을 찾고 있다. 비결은 ‘존중’이다. 공감하기 힘든 게 있을 때도 바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하룻밤 지나고 나서 얘기한다. 서로가 틀릴 수 있다는 관용을 갖고 대한다”고 말했다. 밀레 회장은 “무엇보다 두 가문이 함께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권력 쟁탈보다 협력하는 게 재미있다. 이런 분위기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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