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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허니버터칩 열풍이 배추 가격 올렸다?

등록 2015-07-12 19:37수정 2015-07-13 13:31

고랭지배추 출하기 대관령 현장 르포
누가 여름 배추가격을 두려워하는가?
지난 2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3리의 한 배추밭에 수확을 앞둔 고랭지배추가 자라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공.
지난 2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3리의 한 배추밭에 수확을 앞둔 고랭지배추가 자라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공.
“요즘 하루에 한잎씩 계속 나와요. 이틀만 물을 안 줘도 배추가 타들어갈 것 같았어요. 가뭄이 계속돼 엊그제까지 옆 개울가에서 물 끌어다 평당 300원씩 주고 40일간 배추밭에 물 주느라 고생했지만 올해 작황은 좋은 편이에요.” 지난 2일, 해발 800m에 이르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3리의 노지 배추밭가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의 농부 김광식씨가 말했다. 며칠 뒤 수확을 앞둔 고랭지배추 잎들이 푸르고 무성하다. “배추 1망(3포기·약 10㎏)이 오늘 여기 산지 경매 낙찰에서 8천원에 팔렸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건 7천원, 다른 건 3천~5천원도 허다해요. 작년엔 배추값이 폭락해 농가는 생산비도 못 건지고 산지 유통인도 40%가량 적자 보고 까먹었어요. 올해는 그나마 나아요.” 옆에서 또다른 농부 곽기성씨가 보탰다. 2010년 배추값 파동 당시엔 서울 가락시장에서 배추 1망당 1만5천원까지 거래됐다.

7~9월은 강원도 고랭지배추 수확 출하의 계절이다. 2013년 전국 배추 생산량은 212만톤인데 이 중에서 고랭지배추는 20만톤에 이른다. 강릉 왕산면 안반덕을 비롯해 평창·삼척·정선·태백은 여름철 도회지 소비자들에게 신선배추를 공급하는 생산기지다. 지난해 전국 고랭지배추 재배 면적 총 5140㏊ 중에서 강원도(4600㏊·생산량 18만톤)가 대부분이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6월 배추값 1년 전보다 90% 폭등 
2010년 배추파동 이후 폭등락 반복
허니버터칩 감자 재배 열풍도 한 요인

가뭄에 40일간 배추밭에 물 대기
온난화, 대관령 배추 산지 위협 

“물가 잡는다고 왜 배추값 난리인지…”
“여름철 배추는 쌀처럼 ‘정치상품’ 돼”
농가도 폭등 안 반가워…수입배추 걱정
배추값 소비자고통 작아…물가영향 미미

2010년부터 폭등·폭락 되풀이

이날 대관령면에 있는 대관령원예농협 회의실에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개최한 ‘고랭지배추 생산·유통 문제’ 현장토론회가 열렸다. 하루 전날 통계청은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 배추 가격이 1년 전보다 90.9% 폭등했다고 발표했다. 배추값은 최근 수년간 7월 상순에 포기당 도매가격(상품·가락시장 경락평균가)이 1718원이었다. 올해는 6월 상순 2480원, 7월6일 2466원으로 크게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7일, 배추에 대해 수급조절 매뉴얼상 ‘가격상승 경계’ 단계로 전망했다. 토론회 머리말에서 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배추는 가을철 핵심 농업품목 중 하나다. 채소만큼 가격 폭등과 폭락이 심한 품목이 없다. 어느 지역에 소나기만 한번 와도 작업이 안 돼 가락동농산물시장에서 가격이 폭등한다”고 말했다.

재배지역이 한정된 고랭지배추는 가뭄·태풍과 재배면적, 대체작물 재배 동향, 나아가 단수(면적당 수확량)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패턴이 고착화하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를 보면, 배추는 2010년 가격 폭등 이후 해마다 폭등과 폭락을 되풀이하고 있다. 수확하기도 전에 배추밭을 갈아엎는 산지 폐기가 지난 10년간 14차례나 일어났다. 가격이 생산비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직거래가 아닌 시장 경로 유통의 경우 고랭지배추의 포기당 농가 수취 가격은 1333원, 유통비용은 3466원으로, 결국 소비자가격은 4800원이었다.

배추값 두려워하는 자 누구?

횡계3리 마을에서 고랭지배추를 키우는 집은 다섯 농가(총 10만평가량)다. 1960년대 중반 안개가 잔뜩 끼는 강릉의 고랭지 ‘안반덕’에서 화전민들이 열무와 가을배추 작기 사이에 고랭지배추를 엇갈이(풋배추)로 심기 시작했을 당시엔 수확한 배추를 마땅히 팔 데가 없었다. “그런 참에 70년대 초 언젠가 홍수가 나면서 배추값이 폭등해 황소 한마리 받고 배추 팔았다는 말이 나오면서 배추농사가 늘기 시작했다고 해요.” 김광식씨의 말이다. 이어 6월 배추값이 폭등했다는 전날 통계청 발표 얘기를 꺼내자 김씨가 한숨을 내쉰다. “왜 배추값을 놓고 서울에서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정치적으로 물가관리 위해 배추값 잡아야 한다고 다들 말하는데, 며칠만 지나면 유통인들 사이에 밀고 당기기 해 가격이 다시 평정되잖아요.”

이날 토론회에서는 배추가 언제부턴가 ‘정치적 상품’이 되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2010년, 4대강 사업으로 강 주변의 배추재배밭이 사라지면서 배추값이 폭등했고, 그 후부터 여름철 물가관리의 핵심 작물로 배추가 꼽혔다는 얘기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은 “여름철에는 배추가 쌀보다도 정치재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의 수급논리 못지않게 정치적 요인이 배추 가격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랭지배추 생산 농부인 곽씨는 “배추값이 오르면 우리 생산자도 산지유통인도 오히려 안 좋아하는 상황이다. 값이 폭등해 포기당 1만5천원이 넘지 않도록 농가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수입산 배추 때문이다. 고랭지배추 가격이 폭등해 그 대신에 수입 배추가 한번 크게 들어와 통로가 열리면 국내 생산기반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는 얘기다.

배추김치 수입량은 2003년 2만9천톤에서 지난해 21만4천톤으로 증가일로에 있다. 배추·당근 같은 채소는 국내 가격이 한번 폭등해 음식점 등이 수입김치로 대체하면 다시 국내산으로 전환하기란 매우 어렵다. 2003~2014년 월별 김치 수입량을 보면, 월동배추·봄배추·고랭지배추·가을배추 출하기 중에서 유독 고랭지배추 출하기(7~9월)에 수입이 집중됐다. 가격이 한번 더 폭등해 출렁이면 수입산으로 대체되는 물량이 더 크게 늘 공산이 크다. 농가의 두려움은 여기에 있다.

소비자도 ‘배추값 고통’ 별로 없어

뜻밖에도 여름철 배추값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크게 낮다는 실증 설문조사 결과도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용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0개 채소품목에 대한 소비자패널 조사(지난 6월21~23일, 총 614명 대상) 결과, 올 6월 배추값이 작년에 견줘 2배 이상 올랐음에도 “조금 비싸진 것 같다” “비싼지 잘 모르겠다” “안 사 먹겠다”는 대답이 주를 이뤘다며, “배추값 때문에 괴로워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평균 지출 비중이나 구입 빈도에 비춰 여름철 물가관리 우선순위가 뭐냐고 소비자들에게 물어보면 10위권에 돼지고기·쇠고기·우유·쌀·수박·무·마늘이 포함되고, 감자는 20위, 배추는 21위에 불과하다. 배추값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난리 피우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배추의 물가가중치(총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2010년 고작 0.17%에 그친다. 배추 가격의 물가 파급 효과는 미미하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의 여름철 배추 구매 횟수도 1~3회로, 가구당 한달 0.9회꼴에 그친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정록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은 “오늘 물가관련 경제장관회의를 하는 중이다. 정책당국 안에서도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 배추 공급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입물량이라도 투입하자는 게 기획재정부인데, 농림부는 수입할당관세로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또 “소비자물가에서 농축수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5년 24%에서 지난해 6.6%로 떨어졌다. 3천원대 커피 두잔이면 배추 3포기 사서 4인 가족이 한달간 먹을 수 있다”며 배추값의 물가 영향이 크게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가뭄, 이미 2007년부터 시작돼

온난화에 따른 고온·가뭄 등 기상 이변도 배추값의 급등락을 높이고 있다. 배추 가격은 4월과 9월에 변동성이 높은데, 고랭지배추 출하기일수록 큰 폭의 변동이 일어난다. “과거엔 여기 고랭지밭에 물 안 주고도 배추 심었는데 언제부턴가 물을 안 주면 기를 수 없게 됐다. 그때가 가뭄의 시작이었다는 걸 당시엔 몰랐다.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김광식씨의 말이다. 대관령의 여름 기온은 지난 30여년간 2도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난화로 배추 재배 적지가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며 “강원도 아래 지역에서 온난화로 배추 재배 여건이 악화되고 상품성이 떨어지면서 고랭지배추 생산지가 강원도로 계속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10~20년 이후엔 고랭지배추 적지가 개마고원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후온난화에 따른 가뭄 장기화로 대관령조차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다.

고랭지배추는 뿌리가 활착하기 전에 비가 많이 와도 문제이지만, 활착 이후 6월에 180㎜ 이상 비가 와줘야 한다. 그러나 올 6월 대관령 강우는 87㎜에 불과했다. 최 연구위원은 “농작물 생육에서 빠른 속도로 토양 수분이 감소하고 채소잎이 마르기 시작하는 ‘농업적 가뭄’이 대관령에서 2007년부터 지속되면서 점점 정형화·토착화하고 있다”며 “대관령이 더 이상 고랭지배추 생산 적지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니버터칩 열풍? 배추 대신 감자

고랭지배추는 감자·무·당근·양배추와 생산작물에서 대체 관계를 갖는다. 특히 감자가 증가하면 배추 재배 면적이 크게 감소한다. 평년에 22만톤 이상에 달하던 강원도 고랭지배추 생산량이 14만톤으로 급감하면서 배추값 파동이 일어난 2010년 당시 고랭지배추 면적은 624㏊ 감소한 반면, 감자 면적은 479㏊나 증가했다. 올해 역시 고랭지배추 면적이 228㏊ 줄어들고 감자는 484㏊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허니버터칩 열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중앙정부 등이 나서 농가를 쫓아다니며 제발 감자 더 많이 심지 말라고 해도 감자 재배를 계속 늘리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감자 확대가 배추 생산 감소에 가장 심각하다. 배추가 이미 감자에 잡아먹힌 상태인데, 여기에 태풍이라도 오면 2010년 배추값 파동이 다시 올 수 있다.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자 등 대체작물 재배가 늘면서 전국 고랭지배추 재배 면적은 2000년 1만206㏊에서 지난해 5140㏊로 절반가량 대폭 줄었다.

대관령/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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