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간섭 차단 위한 ‘꼼수’인듯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경영 참여를 선언한 뒤, 기업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경제단체 등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당 의원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해,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15일 호소문을 내어 “투기성 헤지펀드는 단기간에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과도한 구조조정 요구, 유상감자나 비정상적인 고배당 요구 등 기업의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의 피해와 거액의 국부유출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제와 같은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포이즌필 등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차등의결권제와 포이즌필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이달 안에 발의하기로 했다. 차등의결권제는 일부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고, 포이즌필은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값에 새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평균 내부지분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경영권 위협은 과장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계의 우려와는 달리 2013년 말 신규순환출자 금지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기업집단의 내부 지분율이 평균 50%를 넘어 외부 주주가 주식 매집에 나서더라도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내부 지분율은 총수 일가, 계열회사, 임원, 자사주 등의 지분을 더한 것으로 2013년에는 54.8%였고 올해는 55.2%(4월1일 기준)로 더 높아진 상황이다.
여기에 삼성물산이 엘리엇과 표 대결에서 이기려고 자사주(5.76%)를 케이씨씨(KCC)에 넘겨 우호지분을 늘린 것처럼 자사주도 경영권 방어 기능을 한다. 아직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각의 합법성 논란은 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엘리엇이 제기한 관련 가처분 소송에서 일단 합법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외국인투자촉진법은 방위산업 등 국가 안보와 관련한 규제가 있어 외국인이 지분을 취득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 대우조선해양, 기아자동차 등 93개 기업(2013년 말 기준)이 이에 해당돼 외국인이 경영권을 얻으려면 산업통상자원부 허가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경제단체와 재계가 포이즌필 등을 요구하는 것은 경영권 방어라기보다는 경영 간섭 차단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지배구조연구원의 윤승영 연구원은 “엘리엇이 7.1% 지분으로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휘두르는데 목소리 큰 주주가 나타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