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성사 이후 삼성의 행로
삼성그룹
잇단 말 뒤집기로 신뢰성 훼손
정관 개정 안건 찬성률 45%대
삼성 경영 방식 불만 표출로 봐야 잃어버린 주주·시장 신뢰 회복 시급
삼성 “방안 고민중”…결과 주목 엘리엇의 패착은 삼성이 합병을 성사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삼성은 신뢰 훼손이라는 큰 상처를 입었다. 엘리엇 쪽은 “회사에 합병 계획을 물었을 때 없다고 하더니 한달 반 뒤에 합병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엘리엇의 공격 직후 삼성물산의 자사주(5.76%)를 우호세력에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삼성은 부인했지만 곧 말을 뒤집고 케이씨씨(KCC)에 매각했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로직스의 사업 전망에 대해서도 지난해 11월 기업설명회(IR)에선 투자 위험을 강조했지만, 삼성물산과의 합병 발표 뒤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자 바이오사업에 대한 전망을 장밋빛으로 바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물산 경영진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는 데 가장 놀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는 비판에 대한 방어 논리를 만드느라 경영진이 회사 가치를 깎아내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50주 가진 소액주주를 찾아가기도 했다. 내가 아는 선배 하나는 대학교 같은 학과의 20년 후배를 보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삼성은 그렇게 총력전을 폈지만, 찬성률은 가까스로 3분의 2를 넘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의 전직 고위임원은 “엘리엇이 제안한 정관 개정 안건들에 대한 찬성률이 45% 수준으로 높게 나왔다. 일단 합병 안건에선 삼성 편에 서서 찬성해줬지만 기존 경영방식에 대해선 절반 정도가 불만을 표출한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삼성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고, 삼성전자는 매출액 기준으로 애플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정보기술(IT) 기업이다. 삼성은 더더욱 기업 투명성과 소액주주 존중이라는 원칙을 잘 준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 “국민여론이 삼성에 던지는 경고와 교훈을 귀담아듣고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삼성식 경영’을 개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임원은 이날 “시장과 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한 방안 마련을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사회와의 소통과 사회공헌을 강화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계열사 조직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꾸고, 통합 삼성물산에 신설하기로 한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위원회를 다른 계열사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미래전략실 임원은 삼성 3세들이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우려되는 계열분리(통합 삼성물산의 재분리)를 하지 않고 공동경영을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이런 작업이 하루 이틀 새 결정될 사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효진 이정훈 기자, 곽정수 선임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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