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발견>의 저자 조안 시울라는 젊은 시절 시간 강사로 노동 철학을 강의하면서 웨이트리스와 바텐더 등 여러 직업을 병행했다. 당시 그녀는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고 전임 교수도 아니었기에 강의와 공부와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했다. 아침에는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대학원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밤에는 식당에서 일했다. 이런 생활에서 그녀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일과 정체성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대학 강사일 때와 대학원생일 때, 그리고 웨이트리스일 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는 어떤 역할이 실제 나일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일 하세요?”이다. 상대방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은 그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당황하기 일쑤다. 오늘날 ‘일(직업)’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스트레스의 주요 원천이다. 그 만큼 일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시울라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서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니었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으며, 일을 부정적으로 여긴 시대도 적지 않았다.
가령 고대 서양인들은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고, 가장 무시무시한 벌의 하나로 ‘쓸모 없고 헛된 노동’을 꼽았다.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가장 무시무시한 고문으로 ‘다나이드의 노동’을 들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나이드는 남편을 죽인 젊은 자매들인데, 그들은 벌로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채우며 여생을 보내야 했다. 비슷한 이야기로 신들을 속인 시시포스는 지옥에서 큰 바위를 쉬지 않고 언덕 위로 밀어올려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 바위가 언덕 정상에 도착하면 그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언덕 위로 올려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시울라는 다나이드와 시시포스를 괴롭힌 것은 ‘소모적이고 지루한 과업, 자유의 상실, 무의미하고 헛된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어떤 일에서 생계 수단으로서의 가치, 선택의 자유, 그리고 정신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힘든 일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의 목적과 의미는 어떤 일 그 자체에 내재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사람도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체험의 질이 많이 다를 수 있고, 또 같은 일이라도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일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즉, 일의 내용과 그 일을 하는 사람 둘 다 중요하다.
또 다른 질문 하나. 일은 ‘삶의 빛’일까, 아니면 ‘삶의 짐’일까? 일의 알맹이와 사람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일의 발견>에서 저자는 어떤 일이 삶의 빛인지 아니면 짐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일’의 의미와 역사를 인문학, 사회과학, 경영학적 관점에서 폭 넓게 고찰함으로써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홍승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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