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모피어스와 함께 훈련용 프로그램 속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있는 곳이 디지털 세상이란 데 놀란다. 네오가 “이게 실제가 아니란 말이오?” 하며 묻자 모피어스가 답한다.
“무엇이 실제인가? 실제란 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지? 만약 자네가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고, 쳐다보는 것을 실제라고 한다면, 실제는 자네 두뇌가 해석한 전기신호에 불과해. 세상은 신경들의 상호작용이 꾸미는 시뮬레이션으로 존재할 뿐이네. 그걸 우리는 매트릭스라 부르지. 네오, 자네는 꿈 세상을 살아온 거야.”
이것이 비단 공상과학(SF) 영화 안에서 만의 일일까? 우리는 눈을 믿고 산다. 눈은 우리를 속이지 않으며, 세상이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세상의 실제는 3차원으로만 존재할까? 5500만년 전 원숭이의 조상 ‘카르폴레스테스’는 나무 사이를 건너뛰지 못했다. 얼굴 양 옆면에 눈이 달려 두 시선이 겹치지 않은 탓에 거리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500만년이 흘러 ‘쇼쇼니우스’에 와서 눈 위치가 얼굴 앞면으로 오면서야 비로소 시선이 겹쳐 3차원적 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평면시’에서 ‘입체시’로 진화한 것이다.
입체시, 즉 사물을 개별적인 ‘있음’으로 분간하는 눈이 인간 뇌의 진화와 맞물리자, 다양한 ‘있음’들에 대한 지식이 늘어났고, 그 결과로 인간의 문명이 지구상에 생겨났다. 지식이 축적될수록 더 많은 ‘있음’들의 질서를 밝히고 체계적으로 가공하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입체시’의 문명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제3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초기에 이 새로운 인류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명한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두 눈에 보이는 ‘있음’들과 그 질서는 사물의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다. 있음의 배후에 ‘비어있음’(空)이 있으며, 이 없음이 있음을 창조하는 뿌리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원자 속의 소립자는 관찰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형태를 바꾸는 일종의 ‘생명현상’이다. 만약 인간의 몸을 엄청난 힘을 가진 압착기로 눌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빈 공간을 모두 없애면 그 크기는 소금의 분자 크기이며, 60억 인구의 몸속 공간을 다 없애면 그 크기는 사과 한 개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상 ‘비어있음’의 덩어리다. 이는 불교의 색즉시공과 맥을 같이한다. 이 ‘빔’은 허무한 허공이 아니라 의미의 그물망이다. ‘의미’는 인간의 입체시가 붙잡지 못하는 높은 차원의 창조의 원리다.
<제3의 눈>(돌베개·김용호 지음)은 넓고 깊다. 서양의 신과학에서 동양의 신비 사상에 이르는 깨달음의 지류를 통해 ‘비어있음이 실제를 창조한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낸다. 짧은 지면으로 이 책의 심오한 통찰을 담을 수 없어 아쉽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근원적 진리로 가는 ‘붉은 알약’을 먹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박승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directan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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