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지기만 처벌” 주주대표소송 항소
경제개혁연대 “상법개정 필요”
경제개혁연대 “상법개정 필요”
한화투자증권이 보유하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의 콜옵션을 ㈜한화 등에 무상으로 양도해 회사가 손해를 입은 데 대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업무집행지시자’로서의 배상 책임을 물은 주주대표소송에서 지시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국내 재벌그룹 경영 관행상 회사 내 법적 지위 없이 이른바 ‘회장님’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책임을 물으려 했으나 ‘증거 부족’의 벽에 가로막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염기창)는 경제개혁연대가 한화투자증권의 전·현직 이사 6명과, 그룹을 총괄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홍동옥 한화그룹 고문(당시 한화그룹 재무팀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김 회장을 제외한 7명이 회사에 12억6700만원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이 소송은 2004년 3월 한화투자증권이 보유하던 대한생명의 주식매입 콜옵션을 무상으로 ㈜한화, 한화건설에 넘겨 회사에 끼친 손해를 이사들과 김승연 회장이 책임지라는 취지로 지난해 제기됐다. 앞서 이 사건과 관련해 김승연 회장한테 형사책임이 있는지도 수사 대상이 됐으나 그룹 재무팀장이던 홍 고문만 관련해 기소됐고, 유죄가 확정됐다. 김 회장은 별도의 배임으로 유죄가 확정돼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무상 양도는 대한생명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였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의 암묵적 지시가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김 회장은 한화투자증권의 이사는 아니다. 그러나 상법에는 이사가 아니더라도 회장 등의 명칭을 쓰면서 업무를 집행하거나,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사실상 지시한 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 조항(401조의 2)이 있어 소송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에 재판부는 “김 회장이 한화그룹 회장으로서 각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더라도, 무상 양도를 지시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홍 고문은 당시 한화투자증권의 이사가 아니라 그룹의 재무팀장이었지만, 관련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만큼 재판부는 상법 401조의 2를 적용해 ‘업무집행지시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했다.
실제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은 회사 내부 자료나 자발적 증언이 없다면 소액주주 입장에선 입증이 불가능에 가까워 사문화한 조항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김승연 회장의 지시나 추인 없이 계열사가 자발적으로 지주회사에 무상으로 양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며 항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지시를 내린 총수는 빠져나가고, ‘금고지기’만 책임지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현실과 법 규정의 괴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사건에서는 피고가 입증 책임을 지게 상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