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큰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과 관련해 지난해 12월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대한항공을 퇴사하는 한 부기장이 사내 게시판에 조양호 회장 앞으로 ‘쓴소리’가 담긴 글을 올리자 조 회장이 댓글을 남겨 눈길을 끈다.
부기장 최아무개씨는 지난 4일 대한항공 사내 전자게시판인 소통광장에 ‘조양호 회장님께’라는 글을 올렸다. 최씨는 이 글에서 “대한항공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국민에게서 받은 모욕과 질타는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직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직원들에게 사과 한번 하셨습니까”라며 “국민, 언론의 이야기는 들으시면서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최씨는 이어 “대한항공은 철저히 회장님의 말 한 마디 한마디에 따라 움직입니다”라며 “우리들의 상관들은 그 회장님의 한마디에 열 가지 절차를 만들고, 열 개의 복지를 삭감하며 회장님의 말을 따릅니다”라고 전했다.
최씨는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 “제가 회장님께 회사를 떠나면서까지 이 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대한항공 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원칙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은 회장님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회장님 곁에는 듣기 좋고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꾼, 탐관오리 같은 이들만 남아 있습니다”라며 “회사를 떠나는 일개 직원의 마지막 충언이라고 생각하시고 우리 직원들, 특히 운항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이 글이 6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조 회장은 점심 무렵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조 회장은 “회사를 떠나면서 준 진심이 느껴지는 제안 고맙습니다”라며 “최 부기장의 글뿐만 아니라 소통광장을 통해 올라오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들 중 합리적인 제안은 회사 경영에 반영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도 다양한 의견을 청취함에 있어 ‘합리적인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 과감히 고치고 원칙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강한 의견이라도 수용하지 않을 방침입니다”라고 적었다. 조 회장은 “더이상 대한항공 안에서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겠지만 최 부기장의 의견은 참고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라며 “다른 곳에서도 더 많은 업무지식을 습득하고 자기계발에 정진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멋진 기장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댓글을 마무리했다. 대한항공 홍보실은 댓글에 대해 “조 회장님이 직접 올리신 글이 맞다”고 확인했다.
윤영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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