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2015년 세법 개정 관련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세번째 세법 개정안이 8월6일 나왔다. 별 문제가 없다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일정 정도 수정을 거쳐 의결될 것이이다. 그러면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가지 세제들이 내년부터 곧바로 시행된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이번 세법 개정안은 경제활력 강화, 민생 안정, 공평 과세, 조세제도 합리화 등을 기본 방향으로 한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성패 여부는 경제활성화의 필요 조건인 내수 기반의 확대·강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두 가지 개편안이 있다. ‘경제활력 강화’의 일환으로 제시된 체크카드·현금영수증 사용액의 공제율 확대 계획
(▶ 관련 기사 : 체크카드·현금영수증 소득공제 확대)과 가계의 ‘재산형성과 주거안정’ 지원 명목으로 나온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안
(▶ 관련 기사 : 내년 도입 ISA, 300만원 순수익 때 세금 61만6천→9만9천원)이다.
그런데 이런 방안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비과세·감면 축소 방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의아스럽다. 비과세·감면의 축소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인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세체계를 단순화하고 합리화 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올해 초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던 ‘연말정산 논란’은 사실 근로소득에 대한 사후적인 세금공제, 즉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당시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정부의 연말정산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까닭도 세제 합리화라는 측면에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체크카드·현금영수증 공제율 확대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도입 계획은 세제 합리화 흐름에 역행한다. 정부 정책의 흐름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면 국민 지지를 얻기는커녕 혼란만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크카드·현금영수증 공제율 확대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도입안이 일말의 기대를 끄는 대목은 있다. 그것은 가계소득 증대와 민간소비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달리 ‘경제활력을 위한 내수 진작’이라는 효과에 의구심이 든다. 왜 그럴까?
민간소비만으로 내수 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정부
첫째, 정부는 내수 기반의 한 쪽만 보고 있다. 국민경제에서 ‘내수’라는 게 뭔가? 이는 일반 국민의 소비, 기업의 국내 투자뿐 아니라 정부의 소비(재정 지출)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흔히 가계소득 증대와 내수 진작을 동일시하는데,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기업이 투자도 안 하고 금고에 쟁여두거나 해외로 빼돌릴 돈을 가계소득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경우에는 가계소득 증대가 곧 내수 진작이다. 그러나 정부한테 갈 세금을 가계로 돌려주는 방식의 가계소득 증대는 전체 내수의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즉 세금을 줄여 내수를 진작시킨다는 생각은, 내수를 차지하는 한 부문(정부)을 다른 부문(민간)으로 슬쩍 옮겨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총량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정부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내수 기반을 옮기는 과정에서 내수 진작 효과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민간소비의 승수효과가 정부지출의 그것보다 크다면 그렇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에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에 의한 ‘강제 소비’가 더 효과적일 수가 있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직접 소비하거나 공공부문의 사람을 더 고용해 임금을 주는 것이 내수 진작을 위해 열등한 대안인가?
둘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도입안은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또다른 ‘부자 감세’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담 완화는 장기적으로 내수 기반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유층일수록 상대적으로 소비성향이 더 낮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도입에 따른 분배 효과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막 취업한 연봉 2000만원 받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 돈이면 월 실수령액이 150만원쯤 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갑순이는 이를 받아 기본 생활비에 더해 학자금대출 상환, 방세 등으로 지출하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넣을 수 있는 돈이 월 20만원(연간 240만원)이라고 치자. 반면에 부유한 집안 출신 갑돌이는 학자금대출 상환이나 방세 등을 스스로 낼 필요가 없다. 여전히 부모님이 대주니까 말이다. 여기에 약간의 용돈까지 받는다면 자신이 버는 것 중에서 월 100만원쯤 충분히 저축할 수 있다. 1년이면 1200만원이다.
이제 이들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대한 세액 감면 정책으로 각각 얼마나 혜택을 보는지 따져보자. 정부가 이번 세법 개정안 발표 때 함께 제공한 납입금액별 세금납부액 비교표를 그대로 적용해본다.
정부가 발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납입금액별 세금 납부액 비교
갑순이의 연간 납입액은 240만원으로, 5년이면 모두 144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연평균 4% 수익률 가정). 현행 제도 하에서는 갑순이는 이 수익에 대해 14%의 세율을 적용받아 약 2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0만원이 넘는 운용수익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이번 정부의 안대로라면 이를 전액 감면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갑순이는 5년간 20만원의 혜택을 보는 셈이다. 반면 갑돌이는 어떨까? 그는 매년 1200만원을 납입해 5년 동안에 모두 72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 이 중 200만원을 뺀 520만원에 대해 9%의 세율이 적용되므로 약 47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현행 제도에서라면 그는 약 101만원의 세금을 냈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이번 정부의 조처가 시행되면 54만원의 혜택을 얻는다. 이처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대한 세금 감면은 같은 급여조건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부자에게 유리한, 즉 세제의 역진성을 강화하는 정책인 것이다.
체크카드·현금영수증 사용액의 공제율 확대안도 마찬가지다. 전년도에 견줘 증가한 사용액에 대해 공제율을 (30%에서) 50%로 높여준다고 하는데, 요즘처럼 쪼들리는 시절에 소비를 표나게 늘릴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부자들이므로, 이 또한 역진적인 성격을 지닌다. 애초 예정된 대로 정부가 같은 금액을 세금으로 걷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면 내수 진작과 소득불평등 해소, 나아가 빈곤 축소까지 ‘세 마리 토끼’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내수 진작을 명목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다른 중요한 목적들을 희생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ISA 도입안은 변종 ‘부자 감세’…금융기관 배만 불릴 뿐
마지막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도입이 우려스러운 더 큰 이유는 국민 모두에게 ‘공돈 심리’를 심어준다는 점이다. 정부가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않거나 종전보다 줄여주겠다는 것은 공돈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렇게 해서 국민 개개인을 ‘펀드매니저’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금융기관의 배만 불려주는 조처일 뿐이다. 정부의 설명자료에도 명시돼 있듯이 개인종합관리계좌란 ‘개인이 직접 구성해 운용하는 펀드’이다.
전에는 금융이라면 그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던 사람들도 이제는 약간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공돈’(세금 감면)을 벌 수 있다. 누가 가만히 있겠나? 세제 혜택은 이렇게 사람을 바꿀 것이다. (물론 전문가가 운용하는 거액의 펀드도 시장수익률이 마이너스에 이르곤 하는데, 모든 개인들이 돈을 벌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당연히 일반 서민들은 금융전문가가 아니다. 자신이 최종 결정을 하더라도 그에 필요한 지식을 어딘가에서 얻어야 한다. 이렇게 온 국민이 ‘금융’의 올가미에 제 발로 걸려 들어오니 금융기관은 가만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보다 튼튼해지고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덩치가 커지는 것은 금융기관의 경쟁력 확보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세법 개정안은, 개인종합관리계좌 제도 도입으로 금융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세제 혜택이라는 ‘당근’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실제로 개인종합관리계좌 제도 도입안은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규제개혁방안’의 일환으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 관련 기사 : 세제 혜택 주는 ‘자산종합계좌’ 도입). 뿐만 아니라 당시엔 연봉 5천만 원 이하로 가입 대상이 제한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 관련 기사 : 2016년 도입 ‘자산종합계좌’ 가입대상 연봉 5천만원 이하), 이번 세법 개정안에 포함된 안에서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를 뺀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으로 가입 대상이 확대되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연 금융소득(‘금융자산’이 아니다)이 2천만원 이상인 자로서, 2013년 기준 13만8천명, 즉 전국민의 0.3%에도 못 미친다. 서민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는 이 때, 정부는 개인의 자산 형성을 통해서보다는 주거 공공성 확대 등 공적 방식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번지수 잘못 찾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국회에서 바로잡아야
세제란 경제의 일부다.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에 따라 세제의 개편 방향도 결정된다. 누가 뭐래도 지금 한국 경제는 정부의 기능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야 하고, 무엇보다 일할 기회를 늘려주고 가계가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정부에 요구되고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는 그런 요구에 정부가 적극 화답했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현재 제출된 것은 어디까지나 ‘안’일 뿐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의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