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보유한 서울 경복궁 옆 주한 미국대사관의 옛 숙소 부지.
대한항공이 서울 경복궁 옆에 보유한 땅에 호텔을 제외한 ‘문화융합센터’를 짓는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호텔 건립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 땅 3만6642㎡를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여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땅은 풍문여고 등 3개 학교가 인접해 있어 7년 넘게 사업 추진이 막혔다. 현행 학교보건법상 숙박시설 설립은 학교 주변 50~200m 이내일 경우 관할 교육청의 재량에 맡기도록 돼 있다. 관할 서울시 중부교육청의 반대가 이어졌고, 대한항공은 2010년 3월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으나 졌다.
19일 대한항공은 공식적으로 호텔 건립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의 한 임원은 “호텔 건립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나중에 여건이 변하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회사의 한 간부는 “이미 교육청에서 불허했는데 관련법이 일부 개정된다고 해도 쉽게 허가가 나리라고 보긴 어렵다”면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 호텔 건립 여건이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추진 중인 문화융합센터에는 공연장 등 문화체험공간 외에 레스토랑, 카페, 편의점 등의 수익시설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사실 이런 수익시설만으로는 2900억원을 들여 사들인 땅이 값어치를 한다고 보긴 어렵다. 이번 계획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따가워진 여론을 의식해 사회공헌 차원의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대한항공 쪽 관계자는 “현재로선 호텔 건립이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무한정 터를 놀릴 수도 없던 차에 관광·문화기업으로서 문화융합센터를 설치하자는 정부 취지에 동의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호텔 건립과 관련한 다른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에서는 잇따라 호텔 건설을 허용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대한항공이 포기하지 않은 호텔 건립의 꿈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 16일 서울행정법원은 종로구 이화동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던 사업자가 호텔 건립을 불허한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없다면 학교와 가까운 곳에 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영등포구에서도 한승투자개발 등이 양평로 일대 사업부지에서 170m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어 남부교육청에 의해 호텔 건립이 불허됐지만, 교육청 행정심판에서 ‘유흥주점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심의를 통과했다.
윤영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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