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이 미국에서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쓴 혐의로 대량 리콜 명령을 받은 가운데, 한국 정부도 문제가 된 차량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18일(현지시각) 폴크스바겐이 2.0리터 디젤엔진 차량에 인증시험을 받는 조건에서만 배출가스 배출량을 줄여주는 장치(defeat device)를 달았다고 발표했다. 이 차량이 일반적인 주행 땐 허용 기준치보다 10~40배에 달하는 질소산화물(NOx)을 배출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모델은 2009~2015년형 제타와 비틀, 골프, 아우디 A3, 2014~2015년형 파사트 등 5개 차종으로 모두 48만2천대다. 마르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20일(현지시각) “소비자와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려 매우 죄송하다. 모든 기관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등 주요 외신들이 전했다.
환경부 교통환경과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미국에서 문제가 된 폴크스바겐·아우디 차량 가운데 한국에 수입돼 판매중인 골프·제타·A3 등 3개 차종에 대해 11월까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수시검사를 시행할 계획”이라며 “인증시험을 받는 조건에서 나오는 배출가스 수치와 실제 도로를 달릴 때 배출가스 수치를 확인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속임수’로 지적받은 장치를 사용했는지 여부도 이러한 방식의 시험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그러나 도로를 주행할 때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미국처럼 리콜 명령 등 행정조처를 하긴 어렵다. 인증시험을 받는 환경이 아닌 실제 도로에서 달리는 디젤차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이나 한국에 견줘 디젤차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가 더 엄격하다.
폭스바겐코리아와 아우디코리아는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차량이 한국으로도 수입됐는지, 같은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사용됐는지 등을 독일 본사에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도요타를 제치고 전세계 판매 1위에 올라섰던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와 판매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그룹은 20일 미국에서 4기통 2.0리터의 터보직접분사(TDI) 디젤엔진이 탑재된 2015년·2016년형 폴크스바겐·아우디 차량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미국 환경보호청과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법무부와 함께 폴크스바겐그룹의 청정공기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중이다. 법 위반이 확정될 경우 폴크스바겐그룹은 대당 최대 3만7500달러(약 4411만원)꼴로, 180억달러(약 21조1770억원)가 넘는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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