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요즘은 기사 마감 뒤 짬이 날 때마다 습관처럼 카카오톡을 본다. 참고로 그동안 나는 일이나 대화에 방해를 받지 말고, 카톡은 내가 꼭 필요할 때 보조적으로만 이용하자는 ‘소신’에 따라 평소에는 무선랜(와이파이)과 데이터(LTE)망을 꺼놓았다. 인터넷 검색 등을 위해 데이터통신이 필요하면 켰다가 끝나면 바로 끈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의 장점은, 스마트폰이 있으면 편리하게 이용하고, 없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내게 카톡 이용 빈도와 시간을 늘린 것은 ‘어르신’들이 보내주는 글과 사진, 영상들이다. 여기서 어르신들이란 그동안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분들이다. 기자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는 사이, 그동안 취재원으로 만났던 정부의 정책당국자와 기업의 임직원, 언론사 선배 기자들이 은퇴해 이제 어르신이 된 것이다. 60~80대인 이들이 보내주는 글과 사진, 영상은 말 그대로 주옥같다. 연륜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여운을 준다. 지난 1일에는 가을 소낙비가 세차게 내렸는데, 남중수 전 케이티(KT) 사장(지금은 대림대 총장)이 정소슬 시인의 ‘시월 비’란 시를 보내왔다. ‘단비가 내리는 10월의 첫 날, 로맨틱 레이니 데이에 어울리는 시 한편 보냅니다~~ㅎ’란 쪽지도 붙였다. 3일에는 서영은의 ‘가을이 오면’이란 노래를 배경으로 삼은 가을빛 영상을 보내왔다.
지금은 여러 어르신들이 보내주는 글과 사진, 영상을 부담없이 즐기면서 때로는 홀로 웃기도 하고, 때로는 ‘웃퍼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웃음을 머금은 채, 때로는 눈물 한방울 매단 상태로 쪽잠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과 생각의 곁순이 웃자라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또 어르신들이 보내준 글과 영상 등을 지인들에게 전달하고, 오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 서먹해진 사람들에게 군더더기 없는 안부인사를 건네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일 받은 시 ‘시월 비’도 혼자 읊조리며 감상에 젖는 게 아까워 지인 몇명과 공유했는데, 한시간 뒤 서울 종로 피맛골 막걸리집에서 제법 운치 있는 ‘벙개모임’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말 못할 고민도 겪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로부터 글과 사진, 영상을 받을 때마다 “잘 지내시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진 속 가을 풍경이 정말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등의 답글을 썼다. 그런데 곧 답글 쓰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카톡을 보내오는 어르신들은 많아지고, 예의상 다르게 답글을 쓰려고 하니 꽤 많은 품이 요구됐다. 그렇다고 답글을 안 쓰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멋진 영상을 자주 보내주시는 어르신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보내주시는 글과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대뜸 “답글 쓰느라 머리 아프지”라고 되묻는다. “답글 쓰려고 애쓰지 마. 어르신들이 카톡을 보내면 ‘이 분 아직 살아있네’ 하고 넘겨. 우리 나이대 사람들의 카톡은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거야. 한겨레 독자들한테도 알려줘.” 내 속을 꿰뚫어본 듯, 답글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준 것이다.
이후 어르신들이 보내주는 글과 사진, 영상이 더욱 정겨워졌다. 어제는 이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10가지 행복 비법을 담은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글을 보내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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