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TPP 가입 검토’에 신중론 제기
미국과 일본 등 12개 나라가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면서 정부와 무역 업계를 중심으로 적극적 참여에 힘을 싣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이해득실을 면밀히 계산해 참여 여부와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무협 등 경제단체 추가 가입론
“한국 무역비중 32% 차지 거대시장
일·베트남 등에 경쟁력 밀릴수도” ‘TPP 조급증’ 반론도 만만찮아 “자동차 등 관세철폐 효과 크지않아
대만 등과 연대로 협상력 키워야” 티피피 타결은 우리나라에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통상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먼저 티피피는 세계 수출 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보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거대 경제권과 양자 간 에프티에이를 적극적으로 체결함으로써 자동차 등 제조업 수출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표방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들어간 티피피 타결로 이런 효과가 얼마나 상쇄되는지 대외 환경의 변화를 면밀하게 점검해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어 우리나라가 티피피에 추가로 참여한다면, 이는 ‘한-일 에프티에이의 우회적 타결’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도 검토 과제다. 지금껏 한-일 에프티에이 협상이 부진했던 것은 일본도 개방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와 핵심 부품·소재 산업에서의 경쟁력 열위 문제 등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2014년 기준 우리 무역수지는 47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일 무역수지는 215억달러 적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나 일부 전문가들은 수출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며 우리의 티피피 추가 가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무역협회는 “티피피 협상이 타결돼 정부도 가입 여부를 결단할 시점에 왔다. 티피피는 우리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라고 밝혔다. 또 엘지(LG)경제연구원의 김형주 연구위원도 “일본, 베트남 등이 미국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게 돼 우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입이 불가피하다”며 “티피피는 중국 눈치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지연시킨 전례를 밟지 말고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티피피 타결에 대해 “공청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쳐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참여를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와 맥락이 닿아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티피피 조급증’으로 보고 신중론을 내세우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티피피로 인한 당장의 관세 철폐 효과는 크지 않다”며 “참여하기에 앞서 티피피로 인한 국내총생산 증대 효과뿐만 아니라 개별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실체 파악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티피피 가입에 따른 효과나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과거 논란을 빚은 거대 경제권과의 양자 간 에프티에이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도 이런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참고 자료’를 보면, 티피피 가입 때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발효 시점 대비 10년 뒤에 1.7~1.8% 증대할 것으로 예견됐다. 이는 한-미 에프티에이(0.02~5.66%)나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0.10~5.62%), 한-중 에프티에이(0.95~3.04%) 등에 견줬을 때 증대 효과가 낮은 편이다. 게다가 티피피에 불참한다 해도 10년 뒤 지디피 감소폭이 0.12%에 그쳐 사실상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국내 산업이 티피피로 수출에 입을 타격은 당분간 제한적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에이치(NH)투자증권의 안기태 분석가는 “완성차의 경우 일본이 관세율 인하를 적용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전자제품은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관세율이 낮거나 부과하지 않고 있어 우리 수출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이상현 분석가도 자동차 분야에 대해 “미국, 멕시코 등에 이미 한국 완성차와 부품업체들이 동반 진출해 있어 실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섬유나 의류 업종은 베트남에서 생산 중인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추후 (티피피) 협정문을 봐야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결을 서둘러서 예상보다는 효과가 적을 것”이라며 “세계 경제에서 무역 비중이 정체하거나 감소하고 있어 경제 효과가 단기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을 듯하다”고 짚었다. 티피피는 또 12개국 저마다 비준 절차 등이 남아 있는 등 발효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의 한 통상부문 담당자는 “미국 대선 등의 영향으로 2017년이나 2018년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가입을 서두른다면 이른바 ‘입장료’ 부담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희섭 변리사는 “미국은 티피피 가입의 선결조건으로 다국적 금융기관이 보유한 고객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 유기농 식품 인증제도 완화 등을 요구했다”고 짚었다. 실제 미국뿐 아니라 일본도 자동차 시장의 강도 높은 개방을 요구하는 등 기존 회원국마다 자국에 유리한 요구 사항을 추가로 내놓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김양희 교수는 “홀로 가입하는 것보다 대만 등 연대세력을 만들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의 공동 현안을 다루고, 한-중은 물론 한-중-일 에프티에이 논의로 지역 정체성을 높여 개방 요구를 방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일·베트남 등에 경쟁력 밀릴수도” ‘TPP 조급증’ 반론도 만만찮아 “자동차 등 관세철폐 효과 크지않아
대만 등과 연대로 협상력 키워야” 티피피 타결은 우리나라에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통상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먼저 티피피는 세계 수출 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보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거대 경제권과 양자 간 에프티에이를 적극적으로 체결함으로써 자동차 등 제조업 수출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표방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들어간 티피피 타결로 이런 효과가 얼마나 상쇄되는지 대외 환경의 변화를 면밀하게 점검해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어 우리나라가 티피피에 추가로 참여한다면, 이는 ‘한-일 에프티에이의 우회적 타결’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도 검토 과제다. 지금껏 한-일 에프티에이 협상이 부진했던 것은 일본도 개방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와 핵심 부품·소재 산업에서의 경쟁력 열위 문제 등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2014년 기준 우리 무역수지는 47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일 무역수지는 215억달러 적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나 일부 전문가들은 수출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며 우리의 티피피 추가 가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무역협회는 “티피피 협상이 타결돼 정부도 가입 여부를 결단할 시점에 왔다. 티피피는 우리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라고 밝혔다. 또 엘지(LG)경제연구원의 김형주 연구위원도 “일본, 베트남 등이 미국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게 돼 우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입이 불가피하다”며 “티피피는 중국 눈치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지연시킨 전례를 밟지 말고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티피피 타결에 대해 “공청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쳐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참여를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와 맥락이 닿아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티피피 조급증’으로 보고 신중론을 내세우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티피피로 인한 당장의 관세 철폐 효과는 크지 않다”며 “참여하기에 앞서 티피피로 인한 국내총생산 증대 효과뿐만 아니라 개별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실체 파악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티피피 가입에 따른 효과나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과거 논란을 빚은 거대 경제권과의 양자 간 에프티에이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도 이런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참고 자료’를 보면, 티피피 가입 때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발효 시점 대비 10년 뒤에 1.7~1.8% 증대할 것으로 예견됐다. 이는 한-미 에프티에이(0.02~5.66%)나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0.10~5.62%), 한-중 에프티에이(0.95~3.04%) 등에 견줬을 때 증대 효과가 낮은 편이다. 게다가 티피피에 불참한다 해도 10년 뒤 지디피 감소폭이 0.12%에 그쳐 사실상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국내 산업이 티피피로 수출에 입을 타격은 당분간 제한적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에이치(NH)투자증권의 안기태 분석가는 “완성차의 경우 일본이 관세율 인하를 적용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전자제품은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관세율이 낮거나 부과하지 않고 있어 우리 수출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이상현 분석가도 자동차 분야에 대해 “미국, 멕시코 등에 이미 한국 완성차와 부품업체들이 동반 진출해 있어 실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섬유나 의류 업종은 베트남에서 생산 중인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추후 (티피피) 협정문을 봐야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결을 서둘러서 예상보다는 효과가 적을 것”이라며 “세계 경제에서 무역 비중이 정체하거나 감소하고 있어 경제 효과가 단기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을 듯하다”고 짚었다. 티피피는 또 12개국 저마다 비준 절차 등이 남아 있는 등 발효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의 한 통상부문 담당자는 “미국 대선 등의 영향으로 2017년이나 2018년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가입을 서두른다면 이른바 ‘입장료’ 부담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희섭 변리사는 “미국은 티피피 가입의 선결조건으로 다국적 금융기관이 보유한 고객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 유기농 식품 인증제도 완화 등을 요구했다”고 짚었다. 실제 미국뿐 아니라 일본도 자동차 시장의 강도 높은 개방을 요구하는 등 기존 회원국마다 자국에 유리한 요구 사항을 추가로 내놓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김양희 교수는 “홀로 가입하는 것보다 대만 등 연대세력을 만들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의 공동 현안을 다루고, 한-중은 물론 한-중-일 에프티에이 논의로 지역 정체성을 높여 개방 요구를 방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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