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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리모컨 쟁탈전, 누가 주판알 잘 튕겼나?

등록 2015-11-08 20:16수정 2015-11-09 10:53

케이블방송 1위 CJ헬로비전, SKT에 매각
유료방송, 케이블방송-통신사 각축장
방송권력이 통신권력에 손들었나?
방송·통신 융합 미래 놓고 업계 ‘술렁’

알고 보면, 미디어 권력 서로 다른 셈법
CJ, 케이블방송 업계 통일천하 꿈꾸다
콘텐츠로 권력 이동에 ‘베팅’ 전환
SKT, 유료방송 업계 순위 단숨에 올려
콘텐츠 가격 협상력↑…시장재편 주도권

케이블 업계 긴장…KT·LGU+ 거센 반발
정부, 독점논란 ‘고차방정식’ 풀어야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씨제이(CJ)헬로비전 인수로 관련 업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는 “에스케이텔레콤이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력을 이용해 유료방송 시장까지 장악하고 콘텐츠 산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한다.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은 1위 사업자가 경쟁 업종인 인터넷텔레비전(IPTV) 사업자에 인수된 것에 혼비백산하는 모습이다. 이번 계약이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 케이블방송 1위 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인데다, 1990년대에 출범한 유료방송 선발주자인 케이블방송 사업자를 후발주자인 인터넷텔레비전 사업자가 삼키는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방송·통신 독점 우려’를 들어 정부에 인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쟁점들을 풀어가야 하는 고차방정식 숙제를 떠안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디어 시장의 재편과 권력 이동에 대한 입방아가 한창이다. “씨제이가 케이블방송 군소 업체들을 사들여 플랫폼 전체를 통합한다는 비전까지 가졌는데 헬로비전을 왜 팔았을까?” “에스케이텔레콤은 인터넷텔레비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플랫폼으로 여기던 케이블방송 헬로비전을 왜 샀을까?” 기업의 속내에 대한 질문들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이에 <한겨레>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양쪽 고위 임원들을 수소문해, 각각 헬로비전을 매각하고 인수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인이 작용했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뒷얘기들을 들어봤다.

무엇보다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과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이 이번 협상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양쪽 모두 실무팀이 작업해 직접 회장한테 보고했고, 회장들이 결정하고 서로 의사소통까지 했다는 전언이 나온다. 참고로, 헬로비전 매각 협상은 지난 9월 하순인 추석에 즈음하여 시작되어 한달 뒤인 10월30일에 외부에 알려지기까지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됐다. 그나마 에스케이텔레콤이 협상 성사를 앞두고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노조에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씨제이 쪽은 그룹 경영총괄 산하 사업팀이 매각 협상을 주도했는데, 헬로비전 대표한테도 협상이 거의 마무리된 뒤에야 알렸다. 에스케이텔레콤 쪽도 이사회 일정까지 잡힌 뒤에야 최고 경영진 일부에게만 알렸다. 이런 이유로 헬로비전 임직원들이 자사 매각 협상이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다른 케이블방송사업자의 인수를 검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CJ에서 SKT로 매각된 CJ헬로비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씨제이, 왜 팔았나

씨제이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헬로비전을 앞세워 92개로 쪼개져 있는 전국 케이블방송 플랫폼을 통합하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룹 차원의 전담반까지 운영됐다. 이를 통해 미국의 컴캐스트나 영국의 버진미디어처럼 ‘케이블방송 공룡’으로 성장하려고 했다. 영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케이블방송사업자가 17개였는데, 지금은 버진미디어 하나로 통합됐다. 미국의 컴캐스트는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린 뒤 콘텐츠 쪽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다.

씨제이는 케이블방송 시장에서 업계 통일천하를 꿈꿔왔다. 케이블방송 사업은 처음엔 유선 방송망을 깔고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후 가입자가 포화되면 사업자 간 인수·합병이 활발해진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 수는 1800만인데, 유료방송 가입자는 2600만이나 된다. 이는 허수가 많다는 뜻으로, 인수·합병이 불가피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씨제이의 통일천하는 쉽지 않았다. 군소 사업자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이에 씨제이는 헬로비전을 상장했다. 주가를 기준으로 케이블방송 가입자의 적정 가치가 산정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헬로비전은 상장 뒤 주가를 기준으로 가입자 한명의 적정 가치를 40만~45만원으로 잡았다. 더 높게 부르면 인수를 포기했다. 이렇게 전국 92개 케이블방송사업자 가운데 23개까지는 무난히 합병했지만, 이후는 답보 상태였다. 남은 사업자들은 여전히 가입자당 70만~80만원의 비싼 가격을 요구했다.

헬로비전은 케이블방송 가입자를 400여만까지 늘려서 유료방송 시장의 15%를 확보했지만 이들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웠다. 추가 인수가 지지부진하자 기업가치는 갈수록 떨어졌다. 이동통신사들이 유료방송 상품을 이통 가입자 유치에 헐값으로 얹어주는 ‘판촉물’로 전락시켰고, 정부도 사실상 방관했다. 케이블방송 업계가 반발 시위까지 벌였으나 달라지는 게 없었다.

결국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군소 업체를 추가로 인수할 것인지, 아니면 플랫폼 통일천하를 포기할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 섰다. 사모펀드인 엠비케이(MBK)파트너스 등이 매물로 내놓은 케이블방송 3위 사업자 씨앤앰(C&M)을 인수하는 방안도 한때 심각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고민 중에 에스케이텔레콤이 씨앤앰 매물에 ‘입질’을 하고 있는 게 포착됐다. 씨제이는 즉각 에스케이텔레콤에 ‘중매쟁이’를 보냈고, 이후에는 에스케이텔레콤이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씨제이가 헬로비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데는 ‘슈퍼 을’이었던 콘텐츠의 지위가 ‘갑’으로 바뀐 것도 크게 고려됐다. 씨제이가 삼구쇼핑(지금은 씨제이오쇼핑)을 인수할 때 딸려온 유선방송을 기반으로 케이블방송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방송 플랫폼이 지상파와 케이블방송밖에 없었다. 채널 사업을 하는 프로그램 공급업자(PP)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유튜브와 넷플릭스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요즘은 콘텐츠 사업자들이 우위에 서는 경우가 더 많다. 지상파 방송들이 인터넷텔레비전의 다시보기 가격을 일방적으로 올린 게 대표적이다. 씨제이는 이런 흐름을 살펴 헬로비전을 매각하고, 씨제이 이앤엠(E&M)의 콘텐츠 사업을 키우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헬로비전을 매각하면서 에스케이텔레콤과 콘텐츠 관련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KT, 왜 샀나

에스케이텔레콤은 이번 인수 배경을 “콘텐츠 대가에 대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헬로비전의 케이블방송 가입자 400여만을 가져와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케이티와 격차를 줄이면서 콘텐츠 가격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88만과 알뜰폰 가입자 90만은 부수적으로 딸려올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한다.

에스케이텔레콤은 그동안 이동통신요금 수입으로 다달이 2조5천억원 가까운 현금이 들어오는데 투자할 곳이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 이동통신 쪽은 가입자점유율이 50%나 되다 보니 가입자를 늘려봤자 정부 규제만 강화될 뿐이다.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전화 등 유선 쪽에 대한 투자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었다. 기존 마케팅 방식으로 가입자를 늘려 케이티의 덩치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가계통신비 부담에 따른 요금 인하 요구로 매출 성장률이 갈수록 둔화하는 것도 고민거리였다. 실제 데이터 중심 요금제, 단말기 지원금 대신 다달이 요금을 20% 깎아주는 약정요금할인 등이 매출 증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5세대 이동통신 등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 규격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엔 꽤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추가 규제를 피하면서 신성장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시장으로 케이티에 크게 뒤처진 유선통신과 유료방송을 꼽았다. 케이블방송의 가입자망(HFC) 고도화에 투자해서 소비자 편익을 증대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투자확대 주문과 창조경제 슬로건에도 부합한다. 케이블방송 가입자망은 고화질 방송이나 초고속인터넷 망으로 사용하기에 최고로 평가된다. 가입자가 초고화질(UHD) 방송을 시청하면서 3차원 온라인게임도 할 수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먼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던 케이블방송 3위 사업자 씨앤앰의 인수를 검토했다. 하지만 주인인 사모펀드가 부르는 가격이 만만찮았다.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씨제이 쪽의 중매쟁이가 문을 두드렸다. 헬로비전을 가져가란다. 조건도 좋다. 케이블방송 1위 사업자인데다 알뜰폰 가입자 90만까지 함께 딸려오는데 가격이 1조원도 안 된다. 게다가 국내 최고 수준의 영화·방송·동영상 콘텐츠를 풍부하게 갖고 있는 씨제이와 전략적 제휴까지 맺을 수 있다. 게다가 양쪽 ‘회장 메시지’가 동봉된 의미심장한 계약이기도 하다.

씨제이가 꿈꾸던 케이블방송 전국 플랫폼 통합의 야망도 매력적이었다. 케이블방송 가입자망은 주파수만큼은 아니더라도 공공재 성격이 있고 희소성도 강하다. 누군가가 먼저 확보하면 경쟁자는 사업 기회를 잃게 된다. 더욱이 기존 케이블방송사업자 가운데 에스케이텔레콤처럼 망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자본과 능력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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