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난 2일 씨제이(CJ)가 케이블방송·알뜰폰 자회사 헬로비전을 에스케이텔레콤(SKT)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힌 뒤, 김진석 헬로비전 대표는 사내방송을 통해 회사가 매각된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리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게 잘 단속하라는 그룹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김 대표는 먼저 “회사가 매각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회사의 수익성이 자꾸 떨어져 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룹 쪽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대표는 담화문 발표 뒤 핵심 경영진과 함께 전국 사업장을 돌며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직원들은 고개를 떨궜다.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회장이 직원들에 대한 예의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요.” 급기야 한 팀장급 직원이 김 대표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김 대표는 고개를 더욱 깊숙히 숙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직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산업 흐름에 따라 사업구조조정을 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고, 그 판단에 따라 회사를 인수하거나 매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헬로비전은 그동안 해마다 1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며 씨제이 미디어·콘텐츠 사업의 버팀목 구실을 했다. 인터넷텔레비전(IPTV) 등장과 콘텐츠 산업의 부상으로 케이블방송 사업의 형편이 예전만 못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
씨제이헬로비전 직원들은 “팔려가는 회사의 직원 처지가 되니, 정말 기분이 개떡같다”고 했다. 포로가 된 기분도 들고, 고용이 유지될까 불안감도 든다고 한다. 올해 입사해 씨제이헬로비전에 배치된 신입사원들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기분이란다. 한 직원은 “팔려가는 회사의 임직원들한테는 공식 발표 1분 전에라도 먼저 매각 사실을 알려주면서 양해를 구하고, 이재현 회장이 이메일이나 영상으로라도 사과 메시지를 전하는 ‘예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른바 ‘빅딜’ 형태의 기업 매각은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사이에서도 있었다. 삼성 역시 매각되는 회사의 임직원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다. 병석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부회장이나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이라도 ‘심심한 사과’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가서 기죽지 말라는 뜻으로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당신들이 있어 자랑스러웠다. 미안하다”고 한마디 건네는 게 ‘회장님’들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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