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9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외국 자본 유출 가능성과 가계 부채 폭증, 신흥시장 성장 둔화라는 지뢰밭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통화정책을 둘러싼 한은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위원 7명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1.5%로 유지하기로 했다. 5개월째 동결이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국내 경제는 내수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나 대외 경제 여건 등에 비춰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내는 내수와 수출, 국외는 선진경제권과 신흥시장이 엇박자를 내는 터라 관망적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한은의 초저금리 고수는 미국의 기준금리 움직임과 상반된다. 미국 실업률이 최근 5.1%에서 5.0%로 내려가면서 연준이 다음달 16일 제로 상태인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에 따라 국내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외국 자본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설이 퍼지던 7월에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감소 폭이 2조6천억원으로 2012년 9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로 풀린 막대한 돈의 회수 움직임은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 둔화 탓에 더 빨라질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08년 미국 경제위기가 유럽 재정위기로 전이됐는데, 이제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3차 파동이 닥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우려에 대해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외환 건전성도 양호해 현재로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대규모 자본 유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 이동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했다.
기준금리 동결은 가계·기업 부채 문제에 한은이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은은 10월 은행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인 9조원 증가했다고 전날 발표했지만,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뒤엔 이 문제를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만 몇달째 되풀이했다. 이 총재는 한계기업 증가에 대해 “저금리 장기화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병행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도 그런 인식으로 구조조정에 적극 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분간 가계·기업 부채 문제의 처방으로 금리를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한편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추정치를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2010~2012년 잠재성장률을 3.6~3.7%로 추정한 2013년 이후 이를 밝히지 않았다. 이 총재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3%대 중반이던 잠재성장률이 노동력과 투자 감소로 낮아졌지만 2%대로 낮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3%대 초반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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