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휴대전화 기기변경 51.1% 의미
휴대전화 기기변경 51.1% 의미
미래창조과학부의 ‘10월 무선통신 서비스 통계’ 자료를 보면, 10월에 새로 개통된 이동통신 단말기(휴대전화) 240만9200대 가운데 51.1%에 해당하는 123만869대가 ‘기기 변경’이었다. 기기변경이란 사업자를 바꾸지 않고 휴대전화만 새 것으로 교체한 경우를 말한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의 광고 문구대로 ‘기변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시장이 안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뒤집어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우선 에스케이텔레콤·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가 이동통신 시장을 각각 50%·30%·20% 비율로 나눠먹는 구도가 고착화하면서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이통사 입장에서 보면, 가입자 쟁탈을 위한 마케팅 비용이 줄어 좋다. 특히 1위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은 적은 비용으로 ‘절대 강자’의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이용자들은 ‘잡힌 물고기’ 신세로 전락해, 요금 인하와 품질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잡힌 물고기한테 양질의 밥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이 쪼그라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동통신 유통점 가운데 판매점들은 이통사로부터 받는 ‘가입자 유치 수수료’(리베이트)로 살아가는데, 가입자를 늘리는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에 견줘 가입자 이탈을 막는 기기변경은 리베이트가 턱없이 적다. 번호이동 리베이트가 30만원이라면 기기변경은 10만원도 안 된다. 기기변경 비율이 커질수록 판매점들이 설 자리는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에스케이텔레콤이 씨제이(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보면, 에스케이텔레콤의 씨제이헬로비전 인수는 이동통신 1위와 알뜰폰 1위 사업자의 결합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의 가입자가 85만명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가입자 점유율이 1.5%포인트 가량 증가한다. 49%대로 떨어졌던 에스케이텔레콤 가입자 점유율이 다시 51%대로 커진다. 미래부가 17년 동안 펴온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1999년 이동전화 1위 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에스케이텔레콤)이 3위 사업자인 신세기통신을 인수·합병해 시장 점유율을 60% 가까이로 늘린 이후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은 사실상 에스케이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출범과 알뜰폰 사업자 허가·육성 등도 그런 맥락에서 추진돼 왔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이 씨제이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기로 하면서 정부가 공을 들여온 알뜰폰 시장 활성화 정책은 방향을 잃고, 더이상 추진할 명분도 사라지게 됐다. 애써 피운 꽃을 에스케이텔레콤이 똑 따가, 속된 말로 ‘죽쒀서 누구 준’ 꼴이 됐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역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불참하면서 불투명해졌다. 항간에는 “미래부 통신정책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에스케이텔레콤은 1일 씨제이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 신청서를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래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 쪽에서 보면, 비로소 지금까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고차원 방정식’ 문제를 받아드는 꼴이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에스케이는 대형 법무법인과 학계 전문가들을 대거 동원해 정부의 문제 풀이를 돕거나 아예 ‘답지’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와 미래부(당시는 정보통신부)가 한국이동통신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인가 심사를 엉터리로 해, 에스케이텔레콤이 정부 정책과 이용자 편익까지 좌지우지하는 사태를 초래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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