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에서 주요 재벌 3·4세들이 잇달아 승진한 가운데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기업 경영권 승계를 위한 특혜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샷법이 향후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를 위한 사업구조 재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난 11월 삼각분할합병과 역삼각합병 등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을 원활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까지 더해지면 경영권 승계가 훨씬 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원샷법은 기업 스스로 사업재편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 및 규제 등을 완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소규모 합병 완화, 합병절차 특례, 지주회사의 종손회사 지분율 완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소규모 합병의 경우 합병으로 발행하는 신주의 총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20% 미만인 경우 존속회사의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의 승인만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10% 이상의 주주가 서면으로 반대하면 합병은 할 수 없다. 또 합병 절차는 기존 2주일 전 주주총회 소집 공고에서 1주일 전으로, 지주회사 종손회사 지분율은 기존 100%에서 50%로 줄어드는 내용도 있다.
엔에이치(NH)투자증권에 따르면, 소규모 합병요건 완화로 시가총액 차이가 5배 이내인 삼성전자(197조원)와 삼성SDS(20조원)의 합병은 삼성전자의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조선, 해양 등 공급과잉 산업을 구조조정하도록 규제 완화를 주장하만 기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나 통합도산법 등으로 가능하다”며 “오히려 삼성 등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소규모 합병 때 (존속회사의) 반대 주주가 10%를 넘으면 무산되도록 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대부분 10% 미만이어서 실효적인 반대가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까지 합쳐지면 경영권 승계가 더 쉬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개정된 상법은 기존 삼각합병이 가능하도록 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삼각분할합병과 역삼각합병이 가능하도록 했다. 삼각합병은 ㄱ회사의 자회사가 제3의 회사와 합병하지만 실제로는 ㄱ회사가 제3의 회사의 영업과 자산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삼각분할합병은 ㄱ회사의 자회사인 인수회사(ㄴ)가 피인수회사(ㄷ)로부터 인수하고 싶은 특정 사업부만 인수하고, ㄷ회사 주주에게는 ㄱ회사의 주식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ㄱ회사는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역삼각합병 역시 ㄹ회사의 자회사인 ㅁ사와 ㅂ사가 합병해 피인수기업인 ㅂ회사가 존속회사가 되고 ㅂ사의 주주는 ㄹ사의 주식을 배정받는 경우를 뜻한다.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발표한 ‘삼각분할합병과 경영권 승계의 함수’를 보면, 삼성의 경우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삼성에스디에스(SDS)가 삼각분할합병으로, 한화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스앤씨(S&C)가 역삼각합병으로 각각 삼성전자와 ㈜한화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나 ㈜한화의 주주총회는 생략할 수 있다. 전 교수는 “재벌 계열사간 합병시 우려되는 불공정한 합병을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주총”이라며 “개정된 상법으로 주총을 생략할 수 있어 부당한 부의 이전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의 경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각분할합병보다 자사주를 이용하는 방식이 더 유리하다”며 “다른 재벌들도 불공정하게 경영권 승계를 할 경우 그로 인해 얻는 이득보다 비용이 더 커 이를 활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도 “특혜 시비를 줄이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부 산하에 민관합동 심의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처럼 특수관계인의 지배구조 강화나 경영권 승계 등으로 이용될 수 있는 계획은 승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