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증시의 관계자가 주가를 주시하고 있다. 이날 미국의 고용 지표가 개선됐지만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 탓에 주가는 하락했다. 뉴욕/AP 연합뉴스
어게인 2008?
새해 벽두에 중국발 파문으로 미국 증시가 ‘역사적 수준’의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분간 중국을 중심으로 어떤 악재가 등장하고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세계 경제가 새로운 위기에 빠질지 말지를 보여주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세계 증시의 새해 첫 주 동향을 보면,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한주 동안 6.2% 급락했다. 이 지수를 산정하기 시작한 1897년 이래 가장 크다. 에스앤피(S&P)500지수 하락 폭(6%)도 역시 1929년 이 지수가 만들어진 이래 최악이다. 에스앤피500지수를 구성하는 500개 대기업의 시가총액은 1조500억달러(약 1259조원)가 줄었다. 중국 증시가 10% 안팎 폭락한 것 등을 종합하면, 다섯 거래일 만에 세계 증시에서 수천조원의 가치가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폭락세는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투매로 이어졌다는 점과 함께 미국 경제의 호재도 불안 심리 앞에서 무력화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첫 주 거래를 마감하는 8일 중국 증시는 당국이 서킷브레이커 발동을 잠정 중단하고 인민은행이 9일 만에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 고시하면서 2% 안팎의 상승세를 탔다. 여기에 지난달 미국 비농업 신규 취업자가 예상치(20만명)를 크게 웃도는 29만2000명 증가했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미국 증시도 장 초반에 오름세를 보였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불안 심리가 넓게 퍼진 데다 유가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증시는 다시 1% 넘게 떨어졌다. 외부 변수에 크게 동요하지 않던 미국 증시마저 ‘중국 변수’에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이제 회복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지만 그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9년 6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무덤덤하던 것과 비교하면 중국의 영향력은 더 도드라진다.
중국이 올해 들어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를 1.6% 절하한 영향 등으로 한국(1.9%), 말레이시아(2.3%), 러시아(3.1%), 멕시코(4.2%) 등 신흥국 통화의 평가절하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수출 경기를 띄우려고 통화 평가절하를 이어간다면 다른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방어가 더 어렵게 된다. 싱가포르 화교은행의 애널리스트 웰리언 위란토는 “모든 게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고시하는) 매일 오전 9시15분에 달렸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지난주의 파동을 거치면서 점점 많은 이들이 2008년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한 해의 첫 주에 다우지수와 에스앤피500지수가 함께 떨어졌을 때 연간 기준으로는 증시가 활황세를 보인 적도 여러 번이지만 비교적 최근인 2000년과 2008년에는 그 반대였다.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7일 스리랑카에서 열린 경제포럼에 참석해 “중국은 경제의 조정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고, 그게 위기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금융시장이 직면한 도전은 2008년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제조업 지표 악화가 새해 첫 개장일인 4일 증시 폭락을 불렀는데, 12월 생산자물가가 5.9% 떨어지면서 46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8일 집계된 것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