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요건 완화 기정사실화
‘지금 그만두는 게 낫다’ 압박
‘지금 그만두는 게 낫다’ 압박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전환배치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이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20일 복수의 삼성전자 임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40~50대 직원들이 지난해에 이어 1월에도 그룹장이나 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퇴직을 종용받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일하는 한 50대 직원은 “지난해부터 그룹장으로부터 회사를 그만둘 것을 강요받았는데 새해에도 변함없이 면담을 통해 ‘퇴사할 생각이 없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면담 과정에서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정부 정책을 근거로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직원은 “팀장이 면담에서 ‘나중에는 저성과자로 평가돼 희망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퇴사할 수 있는데 차라리 지금 (퇴사)하는 것이 낫다’며 회사를 관둘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퇴직금으로 차장급은 2억2천만원, 부장급은 2억5천만원 수준인데, 이것이라도 받으려면 지금 나가는 것이 좋다는 식이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를 담은 ‘2대 지침’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회사 쪽이 ‘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여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침 변경이 확정돼 불이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셈이다.
퇴사 압박을 받은 직원들은 현재 일감이 없어 출퇴근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50대 직원은 “업무 결재 라인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져 컴퓨터나 책으로 업무 관련 지식만 쌓고 있을 뿐이다. 기존 직원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홀로 식사를 하거나 같은 처지인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대학교 입학해 한창 씀씀이가 많아질 시기에 강제퇴직을 당하면 머지않아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다. 20년 가까이 회사만 알고 일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나가달라’는 말뿐이다”라며 씁쓸해했다.
이런 모습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의 건설 계열사에서 일하는 한 부장은 “면담을 통해 계속 퇴사 압력이 있다. 심지어 젊은 직원들도 면담을 거쳐 퇴사했다가 (1~2년차인데도 희망퇴직한) 두산인프라코어 사례가 알려지면서 다시 입사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과 삼성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위적 구조조정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편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이날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지난 18일부터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서초사옥 1층 로비에 마련된 부스에 수요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이 서명했다. 노동계에서는 입법 촉구 대상의 하나인 노동관계법이 파견 대상을 완화해 기존 정규직 일자리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정부와 재계의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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