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백화점들에 20년 동안 상품을 납품해온 중소기업 대표인 김아무개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한 백화점과 맺은 계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
개선 안되는 갑을관계
20년 거래 납품업체 사장이 털어놓은 ‘실상’
20년 거래 납품업체 사장이 털어놓은 ‘실상’
“중소 납품업체들이 백화점에 이익을 모두 뺏기니 외국처럼 기술 개발을 해서 명품을 만들거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없다. 청년세대의 취업난이 극심한 것에는 백화점 같은 대기업의 책임이 크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에 20년 간 상품을 납품하고 있는 김아무개 사장은 26일 익명을 조건으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사장은 “백화점은 ‘슈퍼왕갑’이고, 납품업체는 ‘노예’인 현실이 지난 수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공정위를 향해서는 “‘백화점의 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김 사장은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백화점의 보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중소 납품업체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말도 못하는 실상을 국민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공정위가 최근 백화점의 지난해 판매수수료율이 평균 27.9%로, 한해 전보다 낮아졌다고 발표했는데?
“엉터리다. 실제로는 훨씬 높다.”
-실상은 어떤가?
“공정위 발표를 보면 셔츠·넥타이의 판매수수료율은 33.9%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40%를 넘는다. 또 여성 정장은 31.7%, 잡화(구두와 핸드백 등)는 31.8%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33~40%에 이른다.”
-공정위 발표는 단순 평균치다. 납품업체나 품목별로 차이가 날 수 있는 것 아닌가?
“평균은 중요하지 않다. 실상을 제대로 알려면 매출 비중이 큰 상품을 봐야 한다. 예로 든 의류와 잡화는 백화점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정부 감시에도 매년 수수료 올려
납품업체 망해 나가는 악순환
백화점에 이익 모두 뺏기니
기술개발·고용 여력 없어
청년 취업난에 대기업 책임 커
공정위 발표 ‘평균치’ 중요하지 않아
셔츠 수수료율 33.9%…실제론 40%
1%p만 높아져도 2600억 넘게 들어
1~2월이 수수료 계약 중요한 시기
공정위가 살피면 실상 알 수 있을 것
조사방식 문제점 알면서 개선 안해
‘공정위는 백화점 대변인’ 말 나와
근본문제는 백화점 특약 매입 방식
반품조건 매입→직매입으로 바꿔야
-백화점 판매수수료율이 공정위 발표보다 1%포인트 높으면, 납품업체의 부담은 얼마나 늘어나나?
“7개 백화점의 2014년도 전체 판매수수료 수입(순매출액)이 7조3628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수수료율이 1%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납품업체의 부담은 2640억원 늘어난다. 만약 수수료율 차이가 5%포인트라고 하면 추가 부담은 1조3천억원에 달한다. 매출액이 500억원인 중소 납품업체의 경우 수수료율을 5%포인트 올리면 부담이 25억원 늘어난다. 연봉 5천만원 하는 직원 50명을 더 고용할 수 있는 큰돈이다.”
-그런데 공정위의 조사결과는 왜 그런가?
“백화점들이 판매수수료율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물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전체 납품업체들의 판매수수료율을 단순 평균해서 발표하는 것을 백화점들이 악용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판매 비중이 작으면서 수수료율이 낮은 품목들을 여러개 만들어, 평균치를 낮춘다. 납품업체들로서는 1~2월이 백화점과 수수료 계약을 맺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공정위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감시를 하면 수수료율이 과도한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모르나?
“공정위도 알고 있는데, 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정위를 보고 ‘백화점 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납품업체와의 간담회를 열었을 때 일이다. 납품업체들이 백화점에서 판매수수료를 올리라고 하면 개 끌려가듯이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하면서, 공정위가 약자의 편이 되어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공정위 담당 국장이 ‘기업 간 거래에 정부가 어떻게 관여하냐’고 답하더라. 2011년 김동수 위원장 시절에 공정위가 판매수수료 인하를 독려할 때는 백화점들이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가 판매수수료율을 감시하니까 백화점들이 납품업체들에 인테리어비나 판촉비 등 부대비용을 전가하는 ‘풍선 효과’도 심한 것 같은데?
“그렇다. 공정위 조사에서도 부대비용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수년간 백화점 등 대규모 유통업체의 납품업체들에 대한 횡포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실제로 달라진 게 없다. 백화점은 슈퍼왕갑이다. 매년 판매수수료율을 계속 올린다. 또 수도권처럼 장사가 잘되는 곳에 매장을 내려면 장사가 안되는 지방 백화점에도 ‘동반 입점’하라며 일종의 ‘끼워팔기’를 한다.”
-납품업체들의 실제 상황은 어떤가?
“노예와 같다. 롯데백화점의 역사가 37년 됐는데, 백화점 주력 상품인 의류와 구두업체 중에서 20년 이상 된 곳이 과연 얼마나 되나? 백화점에 들어왔다가 부도가 나서 나가고, 다시 새 업체가 들어왔다가 얼마 못 가 부도가 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내가 평소 회사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자’는 것이다. 납품업체들이 적정이윤을 내야 기술 개발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이익을 백화점에 뺏기니, 외국처럼 명품을 만들거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없다. 지금 청년세대의 취업난이 극심한데, 백화점 같은 대기업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세일 행사(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할 때도 백화점이 가격 할인 부담을 납품업체들에 전가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재주는 곰(납품업체)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백화점)이 버는 구조다. 할인 행사를 하면 판매수수료율을 소폭 낮춰준다. 예를 들어 30~50% 할인을 하면 수수료율을 3%포인트, 20% 할인을 하면 2%포인트 낮춰주는 식이다. 평상시 납품업체가 100억원어치를 팔면 백화점은 대략 3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납품업체가 30% 이상 할인을 해서 매출이 200억원으로 2배 늘어나면, 백화점은 깎아준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수수료 수입이 64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난다. 하지만 납품업체는 이익률이 아무리 잘해도 3%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박하기 때문에, 할인 행사를 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인 행사를 지시한 것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를 모두 살리자는 취지였는데?
“현실에서는 중소기업은 죽고 백화점만 살찌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가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납품업체들 중에는 판매수수료율 인하도 못 받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 행사를 자청하는 곳도 있다. 백화점이 매년 판매 실적이 안 좋은 납품업체에는 백화점 내 위치가 안 좋은 곳으로 매장을 옮기도록 한다. 위치가 안 좋은 매장으로 가면 실적이 더 나빠져 결국 망하게 된다. 그러니 납품업체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자진해서 수수료 인하도 포기하고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백화점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완화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현실에서는 나아지는 게 없는데, 과징금을 낮춘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니 백화점과 공정위가 ‘한통속’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납품업체들이 힘을 모을 생각은 안 해봤나?
“그래야 하는데, 보복을 당할까봐 뭉치지 못한다. 납품업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언론에 당당히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 있나? 백화점이 얼마나 무서우면 그러겠는가? 이게 민주사회인가?”
-판매수수료는 원칙적으로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일종의 가격이다. 정부가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해법이 있는가?
“공정위가 판매수수료율 발표 방식을 바꿔야 한다. 매출 비중을 반영한 가중평균으로 공개해야 백화점의 물타기를 막을 수 있다. 또 최고 판매수수료율의 실태도 공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백화점의 ‘특약 매입’ 거래 방식을 뜯어고쳐야 한다. 특약매입은 백화점이 납품업체로부터 ‘반품 조건부’로 상품을 외상 매입한 뒤 판매하는 방식으로, 재고 부담과 판매사원 인건비를 모두 납품업체가 부담하게 된다.”
-특약매입은 전세계적으로 한국 외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에 일부 남아있는 정도다. 백화점은 판매 장소(매장)만 빌려주면서도, 판매액이 늘어나면 가만히 앉아서 수수료를 더 챙긴다. 또 월초에 납품업체로부터 물건을 외상 구입해서 장사하고 다음달 10일 판매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판매금을 납품업체에 돌려주기 때문에, 백화점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임대료가 후불인데, 백화점은 선불을 받는 셈이고, 막대한 판매금을 최장 40일 동안 제멋대로 융통하면서 납품업체에는 이자 한푼 주지 않는다. 악덕 부동산 임대업자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백화점들이 해외에 진출해서 성공한 예가 거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국내처럼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납품업체 망해 나가는 악순환
백화점에 이익 모두 뺏기니
기술개발·고용 여력 없어
청년 취업난에 대기업 책임 커
공정위 발표 ‘평균치’ 중요하지 않아
셔츠 수수료율 33.9%…실제론 40%
1%p만 높아져도 2600억 넘게 들어
1~2월이 수수료 계약 중요한 시기
공정위가 살피면 실상 알 수 있을 것
조사방식 문제점 알면서 개선 안해
‘공정위는 백화점 대변인’ 말 나와
근본문제는 백화점 특약 매입 방식
반품조건 매입→직매입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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