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3월3일 대한증권거래소의 출범과 함께 문을 연 한국 주식시장이 3일로 개장 60주년을 맞는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직원들이 6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달러 언제든 빌려 쓰는 제도
유일호 부총리 “다시 하는 게 맞아”
기재부 “원론적 발언” 진화 나서
외환 상황 괜찮고 단기외채 적어
경제 침체기에 체결했던 미국
회복 흐름 탄 지금은 소극적
유일호 부총리 “다시 하는 게 맞아”
기재부 “원론적 발언” 진화 나서
외환 상황 괜찮고 단기외채 적어
경제 침체기에 체결했던 미국
회복 흐름 탄 지금은 소극적
“한미 통화스와프는 다시 체결하는 게 맞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의미가 있다. 필요한 시점이 되면 (미국에) 논의하자고 할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통화스와프는 ‘통화를 교환한다’는 뜻으로 거래 당사자가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통화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체결된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고 속 달러를 마이너스 통장처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된다. 통화스와프는 금융위기로 원화값이 급락(환율 상승)하던 지난 2008년 10월 말 체결되자마자 원화값이 64원 급상승(환율 하락)하며 위력을 드러낸 적이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약정 체결 필요성을 강조한 언급을 한 건 지난 2010년 2월 약정 종료 이후 처음이라 시장 참여자나 전문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더구나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재약정 추진은)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최상목 기재부 1차관)고 하는 말이 흘러나온 터였다. 이에 유 부총리의 발언 뒤 정부가 최근 커지는 외환시장 불안을 달래려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슬그머니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발언 진앙지이자 약정 재추진의 실무를 맡아야 하는 기재부에선 유 부총리 발언 진화에 힘쓰고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한 정부의 속사정은 뭘까.
■ “굳이 할 필요가…”
진승호 기재부 국제금융협력국장은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 부총리의 말은 (간담회에서) 질의가 나오자 한 원론적인 발언이었다”며 “실무선에서도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미국 쪽과 오가는 이야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기재부 안에선 통화스와프 체결을 적극 추진하자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통화스와프라는 특효약을 써야할 정도로 시장 불안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60원 남짓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도 커졌으나 정부는 전반적인 대외 건전성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한 예로 금융위기 때 가장 큰 불안 요인이었던 ‘단기외채 비율’(단기외채/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현재 29.6%로, 2008년 74.0%보다 크게 낮다. 석달 안에 갚아야 하는 외채 규모에 견줘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최지영 기재부 국제금융과장은 “순대외채권(외국에 받을 돈에서 줄 돈을 뺀 금액)이 사상 최대치를 보이는 등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성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자리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입 물가도 끌어올려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 우려를 덜 수 있다. 기재부 경제정책국의 한 당국자는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성장률이 0.04~0.05%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두달 남짓 동안의 원-달러 평균환율은 1209.9원으로, 지난해 평균환율(1131.5원)보다 6.8%가량 높다. 3%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정부로선 최근 환율 상승이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 “하고싶어도 못해”
그렇다고 통화스와프 재약정이 당장 가능한데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진실은 반대에 가깝다. 기재부의 한 당국자는 “마이너스 통장을 준다는데 받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라고 말했다.
실제 미 연준은 2010년 2월 한국을 비롯한 브라질과 멕시코,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통화스와프 약정이 끝난 뒤 재약정 필요성에 줄곧 무게를 싣지 않았다. 지난 2014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 와중에 나온 일부 국가들의 통화스와프 확대 요구에 대해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은 “연준은 세계의 중앙은행이 아니라 미국의 중앙은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은 현재 유럽중앙은행(ECB), 일본, 캐나다, 스위스, 영국 등 5개국과만 통화스와프 약정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통화스와프 확대에 소극적인 이유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에 담긴 2008년 9월과 10월의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외국의 달러 부족은 미국 안팎의 단기 금리를 상승시켰다. 위원회(미 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다른 나라와의 통화스와프 확대를 제의했다.”(p331~332) “(미국) 경제가 빠르게 침체될 때 달러값 상승은 좋은 뉴스가 아니었다. 수출품 가격을 상승시켜 경쟁력을 잃게 한다. 한국 등 4개 신흥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했다.”(p431~432) 이는 2008년 당시 통화스와프 확대가 미국의 금융위기에 감염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다시 미국의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현재 주춤하면서도 완만하게 회복되는 흐름을 보이는 미국 경제 상황을 볼 때, 미국이 통화스와프 약정에 적극적일 가능성은 작다. 별다른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유일호 부총리가 재약정 추진을 언급한 것은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고 짚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한-미 통화스와프 약정 체결 전후 원-달러 환율 추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달러 스와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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