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로 거래 취소해 정정
3일 오전 9시께 외환 거래 시스템 화면을 들여다본 이들은 ‘1126.5’라는 숫자에 눈을 의심했다. 원-달러 환율 개장가는 전날 종가(2일은 1227.5원)에서 기껏해야 몇 원 오르내리는 게 보통인데 101원이나 폭락한 것이다. 전날 현물 거래량이 96억6천만달러(약 11조8천억원)였던 점을 감안하면 달러 가치가 하루아침에 1조원 가까이 증발한 셈이다.
소동은 작은 실수에서 비롯됐다. 이날 아침 1226.5원씩에 달러를 팔겠다는 전화 주문을 받은 외국환중개업체 중개인이 100원 단위의 숫자를 ‘2’가 아니라 ‘1’로 입력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부랴부랴 거래를 취소시키고 개장가를 9시27분에 1227.0원으로 수정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주문을 몇원 또는 몇십원 잘못 입력하는 경우는 있어도 100원 단위의 오류는 매우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개장 때 외국환은행이 입력하는 주문이 같은 날 새벽 미국 뉴욕 차액결제선물환시장 원-달러 종가와 5원 이상 차이 나면 모니터에 경고창이 뜬다. 서울 외환시장 개장가는 뉴욕 시장 종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데, 매수·매도 주문 가격이 크게 차이 나면 혹시 잘못 입력했는지 점검하라는 뜻에서다.
하지만 문제의 주문은 컴퓨터가 아니라 전화로 이뤄졌다. 전화 주문은 내용이 잘못 전달될 가능성뿐 아니라 초를 다투는 외환시장의 특성 때문에 요즘은 드물게 이뤄진다. 이번 거래액은 수백만달러인 것으로 전해졌다. 달러당 101원씩이나 싸게 판 쪽은 수억원을 날리고 산 쪽은 그만큼 횡재한 셈이지만, 거래는 합의에 따라 없는 게 됐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이런 경우에 대한 지침이 있고, 양쪽이 상대방 등과 활발히 매수·매도 거래를 하는 은행들이라 원만히 취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 주문 오류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편 원-달러 환율은 이날 12.9원 내린 1214.6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 연말부터 상승세를 탄 환율은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순매수하면서 이번주 들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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