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부의장과 이사가 물가 흐름을 두고 엇갈린 인식을 드러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잣대가 물가와 고용 동향이라는 점에서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논의 내용이 더욱 주목된다.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은 7일(현지 시각) 미국기업경제학회 컨퍼런스 연설에서 “우리는 그동안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기를 바랐는데 이제 그 첫 움직임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피셔 부의장은 적잖은 전문가들이 미국의 임금 정체 현상을 고용(실업)과 물가 사이의 전통적 관계(필립스곡선)가 깨진 것으로 진단하는 데 대해 반박하면서 이렇게 밝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그는 “이런 관계가 매우 강하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업률이 4.9%로 떨어지는 등 노동시장이 호조를 보여 이것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릴 것이란 얘기다.
연준 안의 ‘매파’로 분류되는 피셔 부의장의 이날 발언은 당장 이번 달은 아니더라도 이른 시간에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쪽의 중요한 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미국 물가 오름세가 미약하고 세계 경제가 불안한 양상을 보여 기준금리 인상에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물가가 연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연준이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물가 상승률이 지난 1월 1.3%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연준 목표치(2%)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가 이런 낮은 물가에 대해 걱정하는 쪽을 대변했다. ‘비둘기파’로 꼽히는 브레이너드 이사는 이날 국제은행가협회 연설에서 “노동시장과 소비 개선 추세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며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여파로) 금융 여건이 좀 더 팍팍해지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약화된 것이 인플레이션과 내수에 하방 위험을 낳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이어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물가 상승률의 2% 목표치 접근 여부를 일러주는 분명한 증거”가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필립스곡선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다소 유보적인 생각을 비춰왔다.
피셔 부의장과 브레이너드 이사로 대표되는 연준 지도부의 이런 물가 인식 차이는 치열한 논전을 예고한다. 다음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상반된 생각이 어떻게 표출되고 이를 재닛 옐런 의장이 정리해서 통화정책으로 내놓을지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편, 피셔 부의장은 중앙은행들의 정책 수단이 바닥난 게 아니냐는 한편의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역풍이 불면서 중앙은행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피셔 부의장은 “중앙은행들이 ‘0% 금리 하한’에 다가선 가운데서도 양적완화를 비롯한 여러 조처를 통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 여력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
이경 선임기자jae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