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 숫자 줄인 ‘일제 주세령’
전통 누룩 내쫓은 ‘일본식 흑국’
쌀로 못 빚게 한 ‘박정희 양곡법’
알코올 도수 따른 차등 과세
전통 누룩 내쫓은 ‘일본식 흑국’
쌀로 못 빚게 한 ‘박정희 양곡법’
알코올 도수 따른 차등 과세
농촌진흥청은 21일 ‘우리나라의 전통 소주와 그 친구들’이라는 보고서를 내 증류식 전통 소주가 시장에서 사라진 원인이 일제 때의 주세령과 일본식 흑국 사용, 알코올(에탄올) 생산 등에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1909년 전통소주 제조장은 2만8천여곳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1909~1934년 사이 다섯 차례 주세령을 발표해 민간에서 자유롭게 만들던 소주 등 전통주를 일정한 규모 이상의 공장에서만 제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제가 주세령을 제정한 이유는 술 제조장을 정부가 관리하고, 술에 세금을 쉽게 매기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는 주세령 외에도 일본식 흑국(검은 누룩)을 식민지 조선에 도입함으로써 전통 소주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맛이 좋지만 비싸고 불안정한 전통 누룩 대신 싸고 안정적인 일본식 흑국을 소주 제조에 사용한 것이다. 1923년 99%에 이르렀던 소주의 전통 누룩 사용률은 1932년엔 5%로 급감했고, 소주의 맛도 변하기 시작했다. 일제가 전통 소주에 가한 다른 타격은 1919년부터 도입된 현대식 주정(알코올, 에탄올) 공장이었다. 쉽고 싸게 95도 정도의 주정을 얻게 되자, 대부분의 소주 제조장들은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타는 희석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도 일제가 남긴 소주 제조 방식은 그대로 남았다. 특히 전쟁과 빈곤으로 곡물이 부족해지자 쌀과 누룩을 사용한 전통 소주 제조는 살아나지 못했다. 전통 소주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은 쌀로는 술을 만들지 못하게 만든 1965년 박정희 정부의 ‘양곡관리법’이었다. 이에 따라 증류식 소주 업체는 1976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증류식 전통 소주가 다시 허용되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제조장이 54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희석식 소주와 위스키, 브랜디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의 입맛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최한석 농업과학원 박사는 “술 수입이 계속 늘어나는데 전통 소주로 그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좋은 소주를 만들려면 좋은 원료와 전통 제조법을 사용해야 하고, 현재 출고가에 부과하는 주세를 알코올 도수에 부과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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