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00~800건 접수
처리지연에 항의 빗발
인권보호 외면 자업자득 곤혹
처리지연에 항의 빗발
인권보호 외면 자업자득 곤혹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 등 통신사들이 밀려드는 가입자들의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 요청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네이버·카카오 같은 포털사들과 엇박자까지 내며 가입자 정보인권 보호 의무를 뒷전으로 미루는 선택을 한 것에 따른 자업자득이란 지적도 나온다.
31일 통신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테러방지법 제정 논란 이후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가입자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정보·수사기관들이 언론·시민단체·국회의원들의 통신자료까지 마구 가져갔다는 <한겨레> 보도를 계기로 가입자 요청은 더 늘어, 일부 사업자는 이전에는 없던 전담인력 배치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한 게 정보·수사기관이란 점 때문에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는 꺼리고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회사 이름은 절대 밝히면 안 된다’는 전제를 달아 “테러방지법 제정 논란 이후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 요청이 빠르게 늘어 하루 700~800건이 접수되고 있다. 일주일 안에 처리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미처 처리하지 못해 항의까지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통신사 팀장은 “너무 많이 몰려 열흘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청자들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바로 주면서 가입자가 사실 확인을 요청할 때는 왜 이렇게 늦게 주느냐’고 항의해, 전담 인력을 늘렸다”고 밝혔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정보·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응할 수 있다고 돼 있고, 정부와 언론도 수사에 협조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런데 한쪽에선 정보·수사기관 눈치를 보느라 가입자 정보인권을 내팽개쳤다고 하니 난감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른 통신사 임원은 “우리도 안 주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제공을 중단할 때 따라 할 걸 그랬다. 통신사들이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거부하게 하려면, 법 개정이나 소송 등 명분을 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 통신사 홍보임원은 “최근 한 보수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만났는데, 그도 통신사실 제공 사실 확인 요청을 해봤더니 수사기관에 제공된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통신사는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던 분인데도, 자기 것을 왜 열람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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