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의무지출제 검토, 야당은 의결권 제한 추진
전성인 교수 제3의 대안 ‘국가 관리’ 제시
재벌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는 방법으로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면서 총수 지배력을 강화하는 폐해를 막기 위한 ‘공익법인 주식 보유 규제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검토하는 ‘의무지출제도’는 재벌의 편법을 도와준다고 비판하며, 공익법인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진보 성향 경제학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의결권 제한도 실효성 확보가 쉽지 않다며 주식을 국가가 대신 관리하는 대안을 내놨다.
박용진 의원은 28일 국회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 규제 방향’ 토론회에서, 최근 조세재정연구원 주최 공청회에서 윤지현 서울대 교수가 제안한 의무지출제도는 오히려 편법 상속·증여를 더 쉽게 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무지출제도는 공익재단의 투자자산(고유목적용 자산 제외) 중 매년 일정 비율(미국은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의무적으로 공익 목적 사업에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다. 박 의원은 “재벌이 산하 공익재단 보유 주식은 그대로 둔 채 다른 계열사로 하여금 현금을 기부하도록 해서 공익 목적 사업에 사용하면 기부받은 주식을 팔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음달 말 발표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 의무지출제도를 포함시킬지 검토 중이다.
박 의원은 공익법인이 지닌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대신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주식 기부 한도를 현행 개별 기업 지분의 5~10%에서 20%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박 의원은 “순수한 취지의 기부는 장려하는 대신 공익법인을 이용해 세금을 안 내고 기업 지배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려는 목적의 기부는 막자는 것”이라며 “다음주에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발표자인 전성인 교수도 의무지출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전 교수는 “삼성생명 공익재단의 부동산을 제외한 주식과 금융자산 보유액은 총 1조원 정도인데, 삼성전자의 2015년도 고유목적사업 기부금만 720억원으로 7%를 넘는다”면서 “의무지출제는 사실상 삼성을 위한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의결권 제한 방안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 면제를 받은 뒤 부당하게) 의결권을 행사했더라도 무효화을 포함한 사후 규제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보완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보완책으로는 의결권 제한을 조건으로 세금을 면제받은 공익법인이 의결권을 다시 행사하려면 주주총회 소집공고 즉시 세무서 사전신고와 공시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면제 받은 상속증여세와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주식을 강제매각하는 등의 제재 방안을 내놨다.
전 교수는 또 제3의 대안으로 주식을 국가가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는 금지하고, 현재 갖고 있거나 향후 출연 받는 주식은 모두 국가가 설립하는 ‘공익법인 보유 주식 관리재단’으로 옮기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며 “주식에서 발생하는 금전배당은 공익법인에 지급하고, 공익법인의 요청이 있을 때는 주식을 팔아 대금을 지급하는 방안으로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박영선 더민주당 의원은 공익법인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이달 초 국회에 냈다. 자산 10조원 이상 28개 대기업집단 중 삼성과 현대차 등 20곳이 40개 공익법인을 통해 다수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어 향후 정부와 국회의 법 개정 방향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