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건설의 사장 선임이 또다시 미뤄졌다. 지난달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선임 절차가 중단되고 외부 인사를 포함해 후보를 재공모한 데 이은 두 번째 연기 조처다. 업계에선 ‘낙하산 인사' 논란 등 외압 의혹이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산업은행과 대우건설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신문로 본사 회의실에서 최종 후보 확정을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일정을 연기했다. 이날 열리기로 한 이사회도 취소됐다. 대우건설은 “사추위원들 간 의견 조율이 안돼 결론을 못 내렸다. 조만간 사추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추위원들은 애초 사장 후보에 오른 박창민 현대산업개발 상임고문과 조응수 전 대우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부사장)에 대한 서류(경영과제) 심사를 한 뒤 최종 1인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박 상임고문은 1979년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한 뒤 2011년 사장에 올랐고, 한국주택협회장도 역임했다. 조 전 부사장은 1977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LNG) 건설현장 등 해외 플랜트 사업을 진두지휘한 ‘대우맨’이다. 이날 사추위에는 사외이사인 권순직 전 <동아일보> 주필, 박간 해관재단 이사, 전영삼 산업은행 부행장, 오진교 산업은행 사모펀드실장이 참석했다. 다른 사외이사인 지홍기 전 영남대 교수는 중국에 출장을 간 상황에서 국제전화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에선 사장 후보 선임 연기는 최근 인선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권 외압과 ‘낙하산’ 의혹 등의 논란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사추위는 지난달 23일, 앞서 최종면접을 본 박영식 현 사장과 이훈복 전무(전략기획본부장)에 대한 심사를 중단하고 돌연 사내외 공모를 통해 유능한 경영인을 선임해야 한다며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이어 지난 13일 사장 후보를 2인으로 압축하기 위한 회의 때는 사외이사 2명이 퇴장하는 등 파행 속에 후보자 선정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또 대우건설 내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유력 ‘친박’ 정치인이 사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기도 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부당한 정치권 압력과 이권이 개입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정한 사장 선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해외 수주 능력을 갖춘 자'라는 사장 공모 자격에 미달하는 박 상임고문이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낙하산이라는 방증”이라며 자진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국내 주택사업에 주력한 회사라는 점에서 박 상임고문의 경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두 사람 모두 능력이 검증됐기에 사장과 부사장에 오른 것은 맞다. 다만, 대우건설은 매출의 40%를 차지하지만 손실이 나고 있는 해외사업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신시장을 개척하는 게 최고경영자의 숙제라는 점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대우건설 사장 최종 후보 선임 유보는 이런저런 의견이 많아 조금 숙려 기간을 두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시이오(CEO) 선임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추위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 등에서) 압력을 넣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종훈 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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