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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악순환 선로서 뛰어내려 새 길 닦는 자영업자들

등록 2016-08-03 18:06수정 2016-08-04 08:58

[더 나은 사회]
거북이조합은 세 가게가 한데 모여 있다. 맨 왼쪽부터 술 파는 ‘민들레’, 이자카야 포장마차 ‘유덕화’, 초밥과 숙성회 전문 ‘아가미’.
거북이조합은 세 가게가 한데 모여 있다. 맨 왼쪽부터 술 파는 ‘민들레’, 이자카야 포장마차 ‘유덕화’, 초밥과 숙성회 전문 ‘아가미’.
자영업은 허술한 철교 위를 지나는 기차와 같다. 철교를 지나고 나서도 안심할 수 없다. 선로는 끊임없이 악순환한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더욱 덜컹이는 철교는 언제 끊겨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인다. 통계청은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8만9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5년 가운데 가장 많은 수다. 자영업자를 절벽으로 내모는 환경적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상권을 확보하기만 하면 치솟는 임대료다.

특히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상권은 기획부동산과 임대사업자의 동맹 속에 임대료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 홍대 상권의 임대료 지옥은 중심부에서 그 주변부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마포구 연남동과 망원동은 소비자에게는 ‘핫플레이스’지만 자영업자들은 그 열기에 따른 임대료 상승에 숨 막혀 한다. 그 안에서 자영업자로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임대료 지옥의 한복판에서 기존 자영업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망원동의 협동식당 ‘달고나’와 연남동의 ‘거북이조합’이 주인공이다. 이 두 곳이 문을 연 지는 한 달 남짓.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한 발은 내디뎠는지 모른다. 그들이 악순환 선로를 돌고 도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말이다.

홍대 상권에서 ‘비스트로 달고나’는 꽤나 유명한 이탈리아 음식점이다. 7년 동안 한자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하지만 ‘바라던’ 성공은 아니었다. 파스타를 팔던 사람들이 평양냉면과 해장국을 팔겠다고 나섰다. 단출한 메뉴의 협동식당 달고나는 지난 7월6일 문을 열었다. 한 달여 만에 식객들 사이에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메뉴만 다른 게 아니다. 협동식당 달고나는 성공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다른 성공을 지향한다. 자본 만능과 소비 의존, 각자도생의 시대와 거리두기를 선택했다. 협동조합 달고나의 김정훈 이사장은 7년간 비스트로 달고나를 운영하며 자영업 악순환의 고리를 몸소 겪었다. “기존의 자영업은 음식점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발전과 성장 면에서 답이 안 나오는 구조예요. 사업자와 직원의 삶과 미래가 나아질 수 없는 시스템이에요”라고 말한다.

임대료 지옥 경험한 홍대 앞 ‘달고나’
식당 ‘운영’만 유지하는 방식 버려
협동조합으로 자급·공생 영역 넓혀

공간의 공유에서 시작된 ‘거북이조합’
느리지만 작은 성공 향해 잰걸음
손님·예술가가 조합원인 공간 꿈꿔

나아질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마냥 달릴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던 이들이 직원 협동조합의 길을 선택했다. 직원 협동조합은, 그 속에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사업주인 협동조합이다. 김정훈 이사장은 “혼자 부자가 될 생각이면 협동조합은 분명히 맞지 않는다. 하지만 고립되지 않고 생존의 위험부담을 나누면서 당분간 수익 면에서는 만족하지 못해도 조합원들과 길게 함께 가는 대안적 방향”이라고 말했다. 식당으로 시작했지만 조합의 사업 영역을 점차 늘릴 예정이다. 조만간 작은 규모라도 식재료 생산과 물류 등을 자급해나갈 계획이라고 김 이사장은 설명했다. 가능하다면 조합원의 주거 문제까지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보기로 했단다.

협동조합 달고나는 조합원 각자가 의미있는 생산자, 노동자가 될 수 있는 바탕을 깔고자 한다. 직업이 그저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꿈꾼다. 김정훈 이사장은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데도 무기력한 사람이 느는 건 노동하는 사람이 자기성취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을 통해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얻으면서 남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그 기회를 만드는 데 적합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 쪽 주장이다. 김 이사장은 “혼자서는 자아실현이나 만족스러운 상품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어려워요.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출자금 형태의 적은 자본 투자로 위험부담은 나누면서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죠”라고 강조했다. 협동조합 달고나는 이르면 오는 9월께 조합원을 추가 모집할 예정이다.

협동식당 달고나의 직원조합원들. 왼쪽부터 이진필, 김동현, 이주영, 강혜민, 김정훈, 허성호 조합원.
협동식당 달고나의 직원조합원들. 왼쪽부터 이진필, 김동현, 이주영, 강혜민, 김정훈, 허성호 조합원.
망원동이 홍대 상권의 동남쪽 끝이라면, 연남동은 북동쪽 끝이다. 경의선 철길이 공원화하면서 이 지역 전체가 요즘 들썩이고 있다. 형형색색 개성 넘치는 가게가 넘쳐난다. 그 가운데 참신함이 더욱 돋보이는 곳이 있다. 지난 6월 말 문을 연 거북이조합이다. 우선 한 공간에 세 개의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는 게 이채롭다. 꼬치 등을 파는 이자카야 포장마차 ‘유덕화’, 초밥과 숙성회 등을 파는 ‘아가미’, 다양한 칵테일과 위스키 등을 내놓는 ‘민들레’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세 가게를 조합원 6명이 같이 운영하고 있다. 가게 이름에는 ‘조합’을 붙였지만, 정식으로 협동조합 사업체 등록을 한 곳은 아니다. 그러나 ‘협업’과 ‘공유’를 통해 공생한다는 운영 방침은 협동조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 가게가 연대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것은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음식점을 열 때의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거북이조합의 이정훈 조합원은 “조합원들이 각자 오랫동안 외식업 관련 일과 장사를 해왔지만 어느 지역이든 자영업자에게 임대료는 큰 짐이 된다. 서로가 도와서 비싼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고 손님에게는 서로가 가진 장점에 맞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거북이조합은 느리고 작은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좀 답답할 법도 하지만, 뜻을 함께 모으고 동의했기에 멈춤 없이 나아가는 중이다. 이런 모습은 주변 자영업자들에게도 자극이 되곤 한다. 이정훈 조합원은 “벌써 주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문의를 주시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힘든 상황들이 닥치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당장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의 의미 등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두 번째 공간을 구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북이조합 역시 가장 큰 숙제는 생존게임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이 조합원은 “매일 일을 마치고 서로가 부족한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나누며 서로의 장사 노하우를 배우고 공부한다. 한 가게가 매출이 적어지면 전체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하면서 부닥치는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같이 해결하는 것이 거북이조합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밝혔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디어도 다듬고 있다. 거북이조합 구성원들은 영업공간이 그저 술과 음식만 즐기는 공간이 아니길 바란다. 그걸 넘어서 다양한 가치를 남기는 공간으로 진화하길 꿈꾼다. 이정훈 조합원은 “손님과 예술가들이 조합원이고 그들이 언제나 공연이나 전시를 선보이고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달리는 악순환 선로가 어느 날 갑자기 선순환될 리 없다. 그렇지만 기차에서 뛰어내려 다른 길을 만드는 협동식당 달고나와 거북이조합의 시도가 이상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주저앉기보다는 협업과 공생의 새 길을 만들어가는 게 가장 현실적인 돌파구일지 모른다.

글·사진 이정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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