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이웃’,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기부, 자원봉사 통한 주민 참여 활발
지역사회와 호혜관계가 사회혁신 동력
지역 넘어 글로벌 모델 될지 관심
기부, 자원봉사 통한 주민 참여 활발
지역사회와 호혜관계가 사회혁신 동력
지역 넘어 글로벌 모델 될지 관심
【사회적기업의 고향 스코틀랜드 탐방】
스코틀랜드 주도 에든버러에서 차로 10여분을 달리자, 잡목이 무성한 버려진 공터 사이로 청록색 잔디를 머금은 축구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역의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다양한 축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소외된 상처를 보듬는 스코틀랜드 최초의 스포츠클럽 사회적기업, ‘스파르탄스 축구 아카데미’(The Spartans Community Football Academy)다. 더글러스 새뮤얼 스파르탄스 축구 아카데미 매니저는 “시이오(CEO)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주축”이라며, “축구 교실 운영은 지역 주민들의 기부와 자원봉사 참여로 이뤄진다. 이것이 스파르탄스 사회적기업 운영의 핵심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에든버러 도심을 벗어나 해안가를 끼고 20여분을 달려 마주한 사회적기업 ‘코켄지 하우스 앤드 가든스’(Cockenzie House & Gardens)는 고풍스러운 옛 스코틀랜드 전통과 문화를 한껏 품은 별장이다. 17세기 성주가 소유하던 곳으로 2008년 요양시설을 끝으로 빈 곳으로 남게 되자, 지역 주민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5000여명의 주민이 기부와 자원봉사 인력으로 참여해 숙박, 레스토랑, 웨딩 사업을 하는데 지난해 연 매출 150만파운드짜리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25년간 지역 주민 4명으로 이뤄진 신탁회사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는다.
10곳 중 4곳 주민 주도 ‘공동체 이익’ 기업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영국은 전세계에서 사회적기업이 가장 먼저 생겨나고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5일부터 일주일간 엘지전자·엘지화학 공동 후원으로 24명의 국내 사회적기업가와 함께 돌아본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은 거창한 ‘기업’이란 단어보단 오히려 지역 주민과 평범한 일상을 함께 사는 따뜻한 ‘이웃’에 가까워 보였다. 지역 주민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 사회적기업이 커 나가고, 사회적기업은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깊은 상호 호혜적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지역 주민들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사회적기업이 있고, 이들을 통해 의료, 주거, 돌봄 등의 영역에서 지역사회 혁신이 이뤄지는 선순환 관계, 그 비결은 뭘까?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두 도시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를 잇는 ‘남부 지역’(Lowlands)엔 스코틀랜드 전체 사회적기업의 약 78%(2014년 12월 기준, 4081개)가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인구에 견준 사회적기업 비중은 셰틀랜드와 에일런 사이어와 같은 스코틀랜드 ‘북부와 섬’(Highlands and Islands) 지역이 월등하다. 스코틀랜드 전체 인구 500여만명 가운데 약 10%가 모여 사는 이곳에 전체 사회적기업의 22%(2014년 12월 기준, 1118개)가 있다. 스코틀랜드 전체에 걸쳐 인구 1천명당 사회적기업이 한 개지만, 셰틀랜드는 4.1명에 이른다. 그 이유는 뭘까? 북부는 상대적으로 척박한 기후와 열악한 생활여건 탓에 시장이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1970년대 삶에 필요한 재화와 주거, 의료, 돌봄 등 필수 사회서비스를 자체 해결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가 나섰고, 이들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선택한 것은 사회적기업이었다.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있는 조너선 코번 ‘사회적 가치 연구소’(Social Value Lab) 대표는 “현재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주식회사가 아닌 ‘자원봉사 단체’(Voluntary Association), ‘자선 기업’(Charitale Company), ‘지역 공동체 이익 기업’(Community Interest Company)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공동체 이익을 우선시하는 지역 주민 주도의 사회적기업 전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말했다.
지역 협력 파트너, 사회적기업 급성장 견인
최근 10여년간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 정부가 내놓은 ‘2015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회적기업 가운데 약 42%가 지난 10년 내 설립됐고, 순이익률도 50% 이상 개선됐다. 급성장의 중심엔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인 ‘저스트엔터프라이즈’와 여기에 소속된 6곳의 지역 협력 파트너가 있다. 스코틀랜드 북부와 섬 지역은 하이세즈(HISEZ: Highlands and Islands Social Enterprise Zone), 래너크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래넉셔 사회적기업 서비스(Lanarkshire Enterprise Services Ltd)가 저스트엔터프라이즈의 지역 협력 파트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기업가 지원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가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설립한 비에스시티시(BSCTC: Badenoch and Strathspey Community Transport Company)는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운수업을 하는데 고령자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이동을 돕기도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매기 로슨 대표는 “고령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적합한 운송 수단이 무엇인지, 이들을 위한 홍보 전단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하이세즈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스트엔터프라이즈 프로그램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샐리 갤러리 매니저는 “지역협력 파트너는 지역 공동체가 인큐베이팅 단계부터 마케팅, 판로 개척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성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대출 서류보다 주민 추천 중요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은 신규 사회적기업 육성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책임경영에 앞장서는 기업가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2014년부터 이를 위한 교육 예산을 따로 책정해 예비 사회적기업가 발굴을 위한 홍보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도 지역 주민의 관심과 지지는 필수다. 로저 무어스 스코틀랜드 사회투자기금(Social Investment Scotland) 최고개발자는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은 기업가라면 대출에 필요한 다른 서류는 필요 없다. 지역 주민의 지지와 참여를 담은 짤막한 서류 한 장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실제 에든버러 시내에서 지역 예술가들에게 작업 및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아웃 오브 더 블루’는 현재 자리로 이전하면서 자금 조달에 애를 먹다 지역 주민들의 소개로 스코틀랜드 사회투자기금을 알게 됐다. 롭 훈 ‘아웃 오브 더 블루’ 매니저는 “주민들과 함께 지역사회 이익을 위해 활동하겠다는 서류 몇 장만으로 15만파운드(당시 약 3억원)를 대출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을 넘어 글로벌 사회적기업 모델로
최근 스코틀랜드 정부는 지역에 기반을 둔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모델을 해외 각국에 확산시켜 다양한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래스고에서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국제 포럼’을 열었다. 생산, 마케팅, 판로 등 여러 분야에서 각국의 지역사회와 주민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이번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방문에 동행한 이대영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창업육성본부장은 “지역 주민의 기부와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 모델이 지역을 넘어 글로벌 사회혁신 모델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글래스고/서재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팀장 jkseo@hani.co.kr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은 지역 주민들의 기부와 자원봉사 등이 운영의 핵심이다. 2016년 여름 에든버러 외곽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스파르탄스 축구 아카데미 수업에 참여한 지역 청소년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스파르탄스 축구 아카데미 제공
자료: 사회적 가치 연구소(Social Value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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